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야곱(창4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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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아버지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장사 지내 드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어 오래 살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문병을 갔습니다. 이때 야곱과 요셉의 만남은 단순한 부자간의 만남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적 비젼(vision)을 다짐하는 자리였고 그것을 확인하고 전수하는 자리였습니다. 야곱의 집은 하나님께서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이 되는 후손의 집안입니다.(창12:2-3) 야곱의 집은 자기들만 잘 되는 복이 아니라 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씀의 능력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 야곱
요셉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자기들을 이곳으로 보냈음을 이르면서 이 축복의 민족이 형성되고 있는 과정으로 후손들이 이렇게 번성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야곱은 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니라” 약속하신 말씀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습니다.(4절) 야곱의 집에 주어졌던 이 축복은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에서 얻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이 직접 낳은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야곱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적자(適子)같은 분깃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양자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각 하나의 지파로서 열두지파 중 두 지파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면 왜 야곱은 이 두 손자를 자신의 친 아들로 입양했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에게 쫓겨나 애굽땅에서 종살이 했던 요셉은 선교 사역자로서 두 손자는 곧 그 선교의 열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들을 더 귀하여 생각해서 요셉의 아들들로 보지 않고 자신의 친 아들로 여겨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이 두 아들이 요셉 지파 대신 편입되어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땅과 후손은 곧 오늘날 “말씀과 성령”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진행했던 것처럼(7절) 오늘날 우리도 세상이 어떤 무엇이 진리를 쫓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해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요셉의 애굽 진출을 통해 하나님은 벌써 세계 선교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야곱은 그 선교의 열매를 그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는 그만큼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 위하여 이 믿음의 행군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마11:12) 가만히 있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2. 두 아들을 양자로 받아드린 야곱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즉석에서 입양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는 입양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아무리 노예라도 입양되는 순간부터 왕이나 귀족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황제 가운데도 몇 명은 그렇게 입양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철인 황제로 이름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노예 중에서 입양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 궁정을 뛰쳐나온 모세는 얼마나 엄청난 결단이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히11:24-26) 어떻게 보면 요셉의 아들들은 굳이 입양하지 않아도 자연히 핏줄이니 복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입양의 절차를 거치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핏줄이나 인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요셉의 아들이고 야곱의 손자라고 해도 야곱이 축복하고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그저 육신의 후손일 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을 안고 자신의 무릎사이에서 물리고((세우고) 야곱에게 엎드려 절하게 했습니다.(12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가 되었음을 증명하고 선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이와 같이 양자로 받아 들인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①야곱에게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의 기업(28:1-19, 35:6-13)을 생명처럼 소중하고 명예롭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②애굽 여성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손자들에게 그들의 앞길이 방향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자극하여 장자의 명분을 잇게 하려 했을 것입니다.
③요셉의 공로를 크게 인정하여 다른 아들들보다 두 몫을 주려는 야곱의 은혜로운 처사였습니다.
④요셉에게 사랑했던 라헬을 기억케 하고, 가나안 땅에 애착심을 주어 약속의 가문의 사명을 강화시키려는 깊은 배려와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내용(15-20)
야곱이 두 아들을 축복한 내용은 많은 재산이나 돈이 아니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체험했던 그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두 손자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었습니다. 조부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에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에게 주셨던 약속과 축복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고자 하십니다.
①우리는 야곱이 축복한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인도하는대로 에브라임은 할아버지 왼편에, 므낫세는 오른편에 앉혔습니다.(13)
이때 야곱은 팔을 어긋펴서 에브라임이 차남인데도 그의 오른손을, 므낫세는 장남인데도 오른편에 얹었습니다.
②축복의 내용은 어떠했습니까?(15-16)
이들이 조상의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믿게 하시니 이 세상에서 번영하여 많은 자손을 갖게 하기를 구했습니다.(16절) 이들에게 유일신 하나님 신앙이 전수되어 같은 하나님을 대대로 섬기게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믿음의 계승권을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야곱은 그들이 세상 축복과 더불어 영적 축복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영적 축복에 방해되는 것은 무엇이나 가감히 버릴 수 있는 바울같은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빌3:8) 야곱은 눈이 어두워 손을 잘못 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하나를 편애하여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신자의 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의 기록을 보면 므낫세도 크지만 에브라임의 후손이 더 번성했습니다.(민1:32-35, 2:18-20), 또 에브라임 지파가 먼저 호명되었으며(시80:2),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였고, 여로보암도 이 지파에 속하였으며 북조 이스라엘의 중심지파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어떤 점입니까?
①하나님은 그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내려줄 때 주권대로 시행하신 다는 점입니다
②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자연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 쓰신다는 것입니다. (가인보다 아벨, 아벨보다 셈, 나홀과 하란보다 아브라함, 아론보다 모세, 다윗과 솔로몬은 그 형들보다 먼저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상속권을 지키도록 제안하셨지만 (신21:17) 자신은 거기에 묶이지 않으시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택하여 쓰셨습니다. 우리도 출생이나 신분에 따라 일할 자세를 취하지 말고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은대로 봉사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소망의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께서 돌아가게 하실 것을 믿으며 죽음 너머까지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성도는 죽음 앞에서까지 억울한 일, 원수에 대한 저주보다는 자신과 그의 후손들에게 준비된 참다운 축복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으며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조용히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 야곱
요셉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자기들을 이곳으로 보냈음을 이르면서 이 축복의 민족이 형성되고 있는 과정으로 후손들이 이렇게 번성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야곱은 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니라” 약속하신 말씀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습니다.(4절) 야곱의 집에 주어졌던 이 축복은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에서 얻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이 직접 낳은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야곱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적자(適子)같은 분깃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양자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각 하나의 지파로서 열두지파 중 두 지파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면 왜 야곱은 이 두 손자를 자신의 친 아들로 입양했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에게 쫓겨나 애굽땅에서 종살이 했던 요셉은 선교 사역자로서 두 손자는 곧 그 선교의 열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들을 더 귀하여 생각해서 요셉의 아들들로 보지 않고 자신의 친 아들로 여겨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이 두 아들이 요셉 지파 대신 편입되어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땅과 후손은 곧 오늘날 “말씀과 성령”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진행했던 것처럼(7절) 오늘날 우리도 세상이 어떤 무엇이 진리를 쫓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해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요셉의 애굽 진출을 통해 하나님은 벌써 세계 선교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야곱은 그 선교의 열매를 그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는 그만큼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 위하여 이 믿음의 행군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마11:12) 가만히 있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2. 두 아들을 양자로 받아드린 야곱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즉석에서 입양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는 입양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아무리 노예라도 입양되는 순간부터 왕이나 귀족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황제 가운데도 몇 명은 그렇게 입양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철인 황제로 이름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노예 중에서 입양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 궁정을 뛰쳐나온 모세는 얼마나 엄청난 결단이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히11:24-26) 어떻게 보면 요셉의 아들들은 굳이 입양하지 않아도 자연히 핏줄이니 복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입양의 절차를 거치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핏줄이나 인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요셉의 아들이고 야곱의 손자라고 해도 야곱이 축복하고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그저 육신의 후손일 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을 안고 자신의 무릎사이에서 물리고((세우고) 야곱에게 엎드려 절하게 했습니다.(12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가 되었음을 증명하고 선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이와 같이 양자로 받아 들인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①야곱에게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의 기업(28:1-19, 35:6-13)을 생명처럼 소중하고 명예롭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②애굽 여성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손자들에게 그들의 앞길이 방향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자극하여 장자의 명분을 잇게 하려 했을 것입니다.
③요셉의 공로를 크게 인정하여 다른 아들들보다 두 몫을 주려는 야곱의 은혜로운 처사였습니다.
④요셉에게 사랑했던 라헬을 기억케 하고, 가나안 땅에 애착심을 주어 약속의 가문의 사명을 강화시키려는 깊은 배려와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내용(15-20)
야곱이 두 아들을 축복한 내용은 많은 재산이나 돈이 아니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체험했던 그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두 손자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었습니다. 조부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에게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에게 주셨던 약속과 축복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고자 하십니다.
①우리는 야곱이 축복한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인도하는대로 에브라임은 할아버지 왼편에, 므낫세는 오른편에 앉혔습니다.(13)
이때 야곱은 팔을 어긋펴서 에브라임이 차남인데도 그의 오른손을, 므낫세는 장남인데도 오른편에 얹었습니다.
②축복의 내용은 어떠했습니까?(15-16)
이들이 조상의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믿게 하시니 이 세상에서 번영하여 많은 자손을 갖게 하기를 구했습니다.(16절) 이들에게 유일신 하나님 신앙이 전수되어 같은 하나님을 대대로 섬기게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믿음의 계승권을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야곱은 그들이 세상 축복과 더불어 영적 축복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영적 축복에 방해되는 것은 무엇이나 가감히 버릴 수 있는 바울같은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빌3:8) 야곱은 눈이 어두워 손을 잘못 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하나를 편애하여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신자의 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의 기록을 보면 므낫세도 크지만 에브라임의 후손이 더 번성했습니다.(민1:32-35, 2:18-20), 또 에브라임 지파가 먼저 호명되었으며(시80:2),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였고, 여로보암도 이 지파에 속하였으며 북조 이스라엘의 중심지파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어떤 점입니까?
①하나님은 그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내려줄 때 주권대로 시행하신 다는 점입니다
②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자연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 쓰신다는 것입니다. (가인보다 아벨, 아벨보다 셈, 나홀과 하란보다 아브라함, 아론보다 모세, 다윗과 솔로몬은 그 형들보다 먼저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상속권을 지키도록 제안하셨지만 (신21:17) 자신은 거기에 묶이지 않으시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택하여 쓰셨습니다. 우리도 출생이나 신분에 따라 일할 자세를 취하지 말고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은대로 봉사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소망의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께서 돌아가게 하실 것을 믿으며 죽음 너머까지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성도는 죽음 앞에서까지 억울한 일, 원수에 대한 저주보다는 자신과 그의 후손들에게 준비된 참다운 축복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으며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조용히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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