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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양곡 정책과 토지 정책(창47: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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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6,998회 작성일 07-01-17 16:33

본문

본문은 장기간 기근으로 핍절한 애굽 거민을 곡식의 유상(有償) 배급으로 구조하고, 그 결과 왕권(王權)의 공고화와 토지의 국유화 및 세제(稅制)의 합리화를 기한 요셉의 탁월하고 현명한 토지 정책에 대한 내용입니다. 히브리 출신 애굽총리인 요셉의 이러한 현정(賢政)은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날 때까지(출1:8) 비교적 오랫동안 애굽 정부로부터 이권(利權)을 보호받으며 자손을 번성하도록 좋은 여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1. 더 큰 고민거리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울 때 정책 책임자는 정말 힘든 것입니다. 잘 해도 욕먹고 저만 배부른 생활을 한다고 오해 받기 쉽고 툭하면 가라치우라고 공격당하기 일쑤입니다. 말이 7년 기근이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놓여있을 때 애굽 사람들과 주위 가나안 사람들까지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풍년 7년 동안 가혹할 정도로 세금을 거두어 들여 창고에 채워 놓았다고 해도 그것은  풍년 때 백성들이 수확한 1/5의 양에 불가했습니다. 백성들은 수확량의 4/5를 가지고 얼마나 풍성이 살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직도 그러한 습관과 그때의 풍성했던 향수에 젖어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빚이라도 얻어서 그 생활을 유지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7년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어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에게는 국민들의 생활 습관과 의식 개혁이 더 문제였던 것입니다.
어떤 정책이고 임시방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대 민주주의 맹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거제도 때문에 자기 임기만 모면 하려는 단기 정책과 우선 선심 쓰기 작전을 하다 보니 국민에게는 내일이 보장 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선 인맥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만 꾀하려는 무리와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치 망상가들의 장난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기회주의자들만 양산되고 누구도 믿지 않으려는 불신만 증폭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치 풍토 속에서는 성실한 사람만 손해보고 요령꾼만 놀아납니다. 더 큰 문제점은 교육의 방향입니다. 어른들의 그런 자녀 교육을 어느 방향으로 지향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학과에 더 보내고 싶겠어요? 당신의 아이라면 노동 지향 쪽으로 보내시겠습니까?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 맹점이며 임기응변식 정치 풍토이고 보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독재정권이나 장기 집권적 전제정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의 올바른 정치 철학과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챤들의 의식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역경 속에서 요셉은 어떠한 경제 정책으로 7년 기근을 돌파 했으며 어떻게 국권을 든든하게 한 거시적(巨視的) 경제 정책을 썼는가를 심도 있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요셉의 거시적(巨視的) 경제 정책
요셉은 처음 무엇을 시도했습니까?(13,14) 절대 무상으로 양식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돈을 지불하고 양식을 사 가게 했습니다. 잘못하면 목 매 맞을 일입니다. 그 양식은 애굽 사람들이 낸 세금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데모가 일어나고 시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때는 다행이 데모주동자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 중국에 가니까 “총통 천수웬”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고 있는데 고궁 박물관 앞에 몇 사람이 앉아 있어요. 그때 가이드가 “저 멍청한 사람들, 한국에 가서 데모 방법을 배워오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시 애굽이 요즈음 한국 같았으면 사태가 어찌 되었을까 상상해 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요셉은 그렇게 해서 전국의 돈을 바로의 궁정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어느 대통령 같으면 화폐를 펑펑 찍어 남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돈이 모두 바닥나자 어떻게 했습니까?(16, 17) “너희 짐승을 내라”(16) 돈이 없으면 짐승과 돈을 교환해 가라고 했습니다. 짐승 떼도 바닥났습니다. 그때 는 땅이 있는 사람은 땅을 내어놓고 그것도 없는 사람은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우선 먹고 살아 남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기근에 몰려 모든 전지(田地)가 바로의 소유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왜 이러한 경제 정책을 썼을까요? 애굽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 것입니까? 애굽 사람들은 7년 동안 너무 풍년에 길들여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으로는 7년 흉년에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흉년 때도 풍년 때처럼 방만하게 살면서 정부나 타인이 생활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우면서도 직접 일하지 않고 종만 부려 먹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사치하고 흥청망청 합니다. 빚을 무서운 줄 모릅니다. 짐승을 마구 잡아먹습니다. 계속 다양한 취미생활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생활 습관과 의식에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시적 안목(巨視的 眼目)으론 혹독하리만큼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 임시는 고생스럽지만 그것만이 부강한 애굽을 만들 수 있음을 멀리 내다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7년 기근을 모면 하려면 생활 수준도 적어도 1/5로 축소되어야 합니다. 아니 주변나라까지 생각하면 그 보다도 더 내핍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봉황의 속을 모르는 백성들은 아마 엄청난 불평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 가정에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내다보고 꿈(vision)을 가지고 일하려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평과 원망을 살 수 있고 그럴싸한 비판의 화살이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도자 요셉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 실패와 혹독한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내일을 위한 더 큰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는 행복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는 허영심만 심어주고 세상 물정 모르게 교육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를 못 보는 미시적(微視的) 안목을 가진 교육을 지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생 고기를 먹고 살게 하고 싶으면 사다만 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데리고 낚시질만 다니면 안 됩니다.

3. 흉년 후 깨달은 백성(23-26)
혹독했던 7년간의 흉년이 끝나자 새로운 토지 법령이 발효되었습니다. 요셉은 모든 농지의 경작권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씨 뿌릴 것을 허용했습니다. 너희가 열심히 농사지어 수확량의 1/5를 바로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가족의 양식으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애굽인들은 요셉의 깊은 속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25)고 자원하여 종 될 것을 고백했습니다. 요셉은 흉년을 이용하여 군국주의를 강화하려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왕권 강화는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난시일수록 강력한 지도자가 없으면 선장 없는 배처럼 국가나 가정이나 어떤 공동체고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 많은 것도 좋지만 진짜 잘난 사람들은 사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백성들이 자원하여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한 고백은 위험이 있을 때 바로를 따르며 목숨 외에 다른 것은 다 버리겠다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풍년 때는 우리 마음대로 다 되는 것 같았고 제 잘난 맛에 살았는데 이제 정부의 혜택이 얼마나 귀한 가를 알았다는 신뢰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지배가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법과 경찰봉으로 때려 막으려는 정책은 삼가하고 요셉의 경제정책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챤들이 구원을 얻고 천국 백성들이 되려면 주님 앞에 자기 자신을 종으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깨달은 크리스챤입니다. 끝으로 제사장에게 특혜를 준 이유도 짚어보고 넘어갑시다. 애굽의 제사장은 물론 히브리의 제사장 같은 하나님의 선택된 그런 사명자들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대적했던 술객들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특혜를 주었습니까?  당시 그들은 왕의 자문위원급에 속하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의 위치를 인정해 주므로 왕과 함께 백성을 다스릴 지배계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필요악적 존재지만 어떤 공동체이고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무정부 상태가 되어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상당히 고려한 요셉다운 지혜의 발상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국가의 통치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국난을 지혜롭게 잘 넘겨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시대에도 요셉과 같은 일꾼들이 교회에서 많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특히 권리 남용이 없으면 권리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 시대를 살면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요셉에 관한 기사(記事: a discription)을 통하여 큰 감동과 많은 깨달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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