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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창4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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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617회 작성일 07-01-0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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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형들을 눈물로 영접하고 고향땅에 돌아가 아버지를 모시고 오도록 부탁한 내용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요셉은 예수님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예표) 인물입니다. 요셉의 사랑은 죄를 회개  시키는 사랑이요, 회개한 자를 뜨겁게 영접해 주는 사랑으로서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롬8:28)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 참으로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더 아는가 하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기뻐해야 할 일도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한숨짓습니다.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지나놓고 보면 얼마나 헛웃음 나올 짓을 우리는 어리석게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고도 놀라운 섭리를 깨닫기 위하여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더욱 기도합시다.

1. 너무도 얼떨떨한 형들(9-15)
자신의 정체를 밝힌 요셉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버지와 손자들까지 데리고 자기와 가까운 고센 땅으로 오게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너무도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고 이사할 것까지 요구받고 보니 형들은 너무도 얼떨떨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요셉의 형들은 흉년 문제에 대하여 그렇게 심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단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만 놀라고 있었습니다.
동생 요셉이, 자기들이 노예로 판 요셉이 대 애굽 제국의 총리라는 사실에 놀라서 얼떨떨하여 믿어지지 않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닥칠 흉년의 심각함을 지금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5년 이상 흉년이 계속될 것이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곳에 미리 보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실로 깊고도 놀랍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멸망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어서 속히 아버지에게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게 된다는 이 놀라운 생명의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내일을 모르고 오늘 일만 생각하면서 얼떨떨했던 형들처럼 우리 크리스챤들은 더 이상 얼떨떨 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내일을 예측 못하는 형들은 뭐 이사까지 해야 하는가 얼떨떨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은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서 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는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고하고 모시고 내려 오라고 거듭 권했습니다.(13)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격스러워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또 형들과 입 맞추며 목을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때야 형제간인 것이 실감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는 멸망할 날을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아마 불쌍한 인생들을 굽어보시며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그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이제 허물없이 대화하며 기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바로에게 초청받은 야곱
이 소식을 들은 애굽왕 바로와 신하들은 총리의 가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요셉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기꺼이 초청했습니다.(16-20) 바로와 신하들이 기쁜 마음으로 초청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첫째 진심으로 요셉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요셉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두 번째는 요셉의 가족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기에 요셉은 내심 외롭고 공허함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이 있다니 모두 애급에 초청하여 요셉을 최상으로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자기들의 도리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요셉에게 고마워했고 요셉이 행복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자기 할 나름입니다. 요셉은 그만큼 근면했고 겸손했으며 애굽인을 사랑하여 최선의 노력을 했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애굽왕으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레까지 내어주었고 애굽의 좋은 것이 너희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 야곱의 찬송
형들은 온 천하에 자신의 범죄가 폭로되게 되었으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차마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해 보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요셉이 형들이 미워했던 것처럼 죽어 버렸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살인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쁠 수 없고 22년간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죄의식이 이제 후유! 하고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며 속이 확 트였을것입니다. 세상의 비난과 아버지의 호통이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에게 어떠한 보복을 당한다고 해도 그가 살아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죄짐이 일시에 벗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였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더 먼저 회개하고 영접했어야 합니다. 기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이스라엘은 그 죄짐을 속히 벗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24절에서 형들을 돌려보내며 요셉이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당부한 말을 읽으며 쇠뭉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을 느껴야 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제자들과 헤어지시면서 무엇이라고 당부하셨습니까?
“네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로 서로 사랑하라”고 (마19:19, 22:39)고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아마 요셉이 형들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언뜻 보면 유치한 것 같이 생각될지 모르지만 과거 자기를 노예로 팔 때 그 문제로 서로 책임을 전과하며 괴로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 용서했으니 편히 길을 다녀오라는 사랑의 당부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눅24:36)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구원받은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빌4:4, 살전5:16) 우리는 과거의 허물을 들추며 서로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상처를 후벼 파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나귀와 떡과 양식을 충분히 주어서 아버지에게 보냈고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돌아가 요셉이 누리고 있는 영화에 대한 놀랍고 감격스런 소식을 전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도저 믿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자기를 태우러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했다고 한 것을 보면(27절) 처음에 까무러쳤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족하도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가슴이 기쁨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다시 한번 놀랐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찬송이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고 일시적으로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고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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