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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대곡(放聲大哭)한 요셉(창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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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503회 작성일 06-12-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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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대곡(放聲大哭)한 요셉(창45:1-8)

오늘 본문은 요셉이 드디어 자신을 밝히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형들은 어떤 때는 불안하고 두려웠으며 어떤 때는 황당했을 것입니다. 간첩으로 몰렸다 총리의 사저에까지 초대받아 융숭한 대접을 하지 않나 엉뚱하게 끝째 동생 베냐민의 쌀자루에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므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암담한 일을 당하지 않나? 도저히 왜 일이 이리도 꼬이고 종잡을 수 없는지 꼭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무엇엔가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 같았습니다.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고 정신이 얼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국은 걸려도 크게 걸렸고 이제 꼼짝없이 빠져 나갈 방법이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었으니 그것은 진실한 희생이 해답의 열쇠였던 것입니다.

1. 절망의 문을 연 열쇠
이 절망의 문을 연 열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유다의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내 놓았습니다. 베냐민과 아버지, 형들을 위하여 자신이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대로 자기 목숨까지  내 놓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을 약속해 주셨는데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빌2:6-7) 이 땅에 내려오시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므로 우리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주셨습니다.(골1:13) 누가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줄 수 있었습니까? (롬7:24) 바울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열쇠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십자가에 친히 못 박아 버리시므로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졌고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내 생명까지도 주지 않으면 남을 살릴 수 없습니다. 유다 자신을 담보한 진실한 사랑은 지금까지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 같던 그들의 황당했던 일들이 이제는 확실히 들어났습니다. 그들의 속이 확 뚫렸습니다. 불안과 어두움이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리도 어리둥절했던 문제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포기할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명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은근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잘 해결될 것을 믿었지만 결과가 엉뚱해 졌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죽기를 각오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친구들이 그런 결단을 했기에 망했습니까? 하나님은 더 높이 들려 올리셨습니다.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죽기로 자신을 담보하려는 유다의 그 진실한 희생의 결단과 베냐민을 아끼며 함께한 그 형들의 태도는 결국 요셉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은 성도는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징징 우는 사람이 슬퍼서 우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감격의 눈물, 기쁨의 눈물입니다.

2. 방성대곡한 요셉
형제들의 태도와 유다의 비장한 결단을 보고 요셉은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방성대곡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지긋지긋한 노예생활, 억울했던 감옥 생활 중에도 울지 않았습니다.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았던 울음이 욱 쏟아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형들이 믿음직스러웠고 그래도 형제애가 남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의 냉동된 가슴을 녹이는 것은 사랑입니다. 진실입니다. 희생입니다. 전도도 말로만 되는 것 아닙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남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함께 나누며 진실한 사랑이 전달될 때 내가 믿는 예수를 그 사람도 믿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왜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으며 운 것입니까?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의 과오를 애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형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요셉의 세심한 사랑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정말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년만의 해후(邂逅)가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안에 이루어진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요셉의 방성대곡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0년간 쌓이고 쌓였던 응어리가 터져 나오며 상처가 치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북 형제들과 이렇게 얼싸안고 울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습니까? 혹시나 다른 사람과 맺혀있는 원한이 있습니까?  복수하고 싶은 숨겨놓은 칼날은 없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한번 붙잡고 실컷 울어보세요.
속이 확 터지며 가슴이 후련해지실 것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생긴 모든 병 뿌리가 깨끗이 치료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가슴에 원한 어린 응어리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병든 기독교인입니다.
3.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意圖) (intention)
이제 요셉은 형들을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사1:18) 형들은 요셉의 정체를 알고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20년간 죄의식으로 시달리고 있었기에 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에 숨겨 놓은 죄는 정신적으로 곧 육체의 병중에 암병 같은 것입니다. 차라리 악을 써 보던지 남에게 속 시원히 말해 버릴 때 숨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이 자수하는 것 아닙니까? 죄는 항상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안전범죄를 했다고 넘어간 것 같아 나중에 술로 세월을 보내거나 엉뚱한 쾌락을 쫓는 불안한 증상이 보여져 들통 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범죄심리학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요셉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형들도 그동안 마음고생이 정말 컸을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범한 행위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갔을 것입니다. 아무리 밉다고 그래도 형제요, 한 아버지 아들인데 열 명이 하나같이 동의하여 동생을 상품으로 헐값에 팔 수 있었다니 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까? 그랬기에 더욱 죄의식에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요셉이 그렇게 답답했던 그들의 인생에 해답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깊고 깊으신 계획이셨다는 것입니다.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며 자식이 부모 속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더더욱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비밀과 계획을 가르쳐 주신다고 한들 다 이해하며 알 수 있겠습니까?(시139:17)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다는 알겠습니까마는 워낙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기에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오늘의 요셉이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노예생활 때에도, 감옥 속에서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뜻이 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극한적인 고통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날 수 있고(잠24:16)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제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조금도 근심하지 말고 한탄(恨歎)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형들 앞서 자기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2년 동안 흉년이 들것인데 하나님께서 내가 애굽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입니다. 이 얼마나 믿음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본의 아니게 나를 괴롭힌다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받아드리는 자세나 해석이 달라야 합니다. 은혜로 받아드리고 깨달으면 결국 내게 유익한 것입니다.
꼭 분하고 억울하게 생각하고 복수하려고 하면 피차간에 손해가 오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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