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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결단(창4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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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6,023회 작성일 06-12-1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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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결단(창43:1-15)
야곱집의 사태가 더욱 심각하여졌습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은 이미 바닥이 났는데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도저히 양식을 구하려 갈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야곱과 아들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까지 생겼으니 야곱은 죽더라도 다시 가서 양식을 구해 오라는 것이었고 형들은 자기들과 약속했던 애굽 총리의 단호했던 모습이 아른거려 감히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고는 그 앞에 다시 실수가 없었습니다.

1. 야곱의 갈등
그때 야곱은 아들들을 탓합니다. 왜 하필이면 베냐민이 있다는 말을 했느냐? 는 것이었고 아들들은 우리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굽총리가 우리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기에 베냐민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요. 설마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7절)  우리가 모두 굶어 죽느니 보다는 베냐민을 함께 가게 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강력하게 버티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더욱  심각한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 고 잃어버린 요셉을 생각만 해도 지금도 가슴이 저리는데 또 베냐민도 그런 운명이 될 것 같아 불안  한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인생을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이편도 저편도 못 들어 줄때가 있습니다. 이때의 결단과 처사가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며 신중히 결정해야 하되 항상 옳은 편,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야곱은 베냐민도 걱정이요, 애굽에 인질로 잡혀 있는 시므온과 굶주린 가족들도 걱정입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에게 한 가닥 기대감이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단장(斷腸)의 아픔을 안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절) 비장한 결단으로 다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각오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버이의 아픔을 알만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픔을 또 한번 되새겨 봅니다. 오죽하셨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혀 운명(運嫇)(마27:45) 하실 때 온 세상이 세 시간 동안이나 흑암이 되었겠습니까?

2. 자기 몸을 담보한 유다(3-10)
우리는 여기서 자기희생을 각오한 유다의 결단을 봅니다. 야곱이 진퇴양난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고 있을 때 유다가 형제들을 대변하여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그래도 자신의 마지막 생명처럼 아끼는 베냐민을 함께 보낼 수 없다고 버티는 아버지 야곱 앞에 유다는 자신의 몸을 담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베냐민을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영원히 죄를 지겠다”(9절)고 비장한 희생을 자청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무모하게 해결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되겠지만 자신의 판단에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과감히 희생을 해서라도 해결하려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나 아니라도 누군가가 해결해 낼 거야” 하는 마냥 버티어 보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해결 해 줄거야” 하는 사고방식이지 이제 성숙된 신앙인이라면 내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해결해 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유다가 자기 몸까지 담보하며 나서지 않았다면 야곱의 가정에 더 기근의 고통이 심했을 것입니다. 설마 죽을 정도로 야곱이  버티진 않았겠지만 가족 전체에 굶주림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어려움이 오면 기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행여 기도한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더욱이 나는 희생 하지 않고 남의 희생만 은근히 기대해도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 일이 성사되고 나면 내가 기도했더니 생색낸다면 어디 올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42장 37절에 보면 큰 아들 르우벤도 강력히 권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와 차별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유다의 자기희생의 결연한 각오와 그의 정직, 솔직, 끈기 있는 인격을 믿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유다에게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죽이려 했을 때도 생명을 구해 주려했던(37:26-27) 사람입니다. 이렇게 유다는 야곱의 집이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의 몸을 담보로까지 희생을 자청하면서 해결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우리도 가정이, 공동체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과감히 자신을 희생하면서라도 해결하려는 신앙자세가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유다의 혈통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나오게 되었던 구속사(救贖史)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지 않습니까?

3. 야곱의 결단(11-15)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야곱은 자식들이나 원망하는 무력하고 나약한 노인의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결단을 내립니다 .마음속에 결심이 서기까지는 많이 망설였고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한 사람 같은 인상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도 사랑했던 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되어보지 않고는 베냐민을 놓고 고민하는 그 야곱의 심정을 결코 모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 은혜 하지만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했던 야곱이 보내기로 마음 작정을 한 다음에는 어떤 지시를 내렸습니까? 11절 이하에 보면 예물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이곳에 준비한 선물은 옛 풍습에 고관직에 있는 분을 만날 때 올리는 예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예물을 보내서 먼저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잘 보아 달라”는 일종의 뇌물 성격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뇌물로 환심을 사려는 의도는 역사를  초월하여 인징상정(人之常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애굽의 권력자 요셉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물보다는 베냐민을 그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올 때 예물보다도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더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물보다도 우리의 몸을, 더 나아가서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6) 하셨습니다. 야곱도, 그의 아들들도 요셉을 몰라도 한참 몰랐습니다. 그는 애굽의 권력자요 높은데 앉아 자기들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분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노를 누그러뜨려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고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면 벼락이나 때리고 망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는 무서운 신 정도로 잘못 알면 안 됩니다.
요셉은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살리려 했습니다. 그리워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와 얼싸안고 기뻐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엡3:19) 그것이 바울사도가 우리를 위해 한 간절한 기도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그리도 고뇌하고 망설였던 결단을 내렸습니다. 14절을 보면 이제 바랄 것은 하나님의 긍휼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뼈아픈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식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식구를 살기기 위하여 어쩔 수 없다는 가슴 아픈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픔이 얼마나 컸음을 우리는 뼈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은 믿는 구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자신의 기도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섰기에 과감한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매사에 믿음이 없이 우물쭈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시면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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