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계시의 역사적 특성(출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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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모세와 아론의 조상을 열거한 내용으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신화적(神話的) 종교가 아닌 역사적(歷史的) 종교임을 분명히 밝히려는 깊은 뜻이 있는 내용입니다. 왜 굳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이러한 내용을 여기에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출애굽기의 중심 사건인 10가기 재앙이 임하기전 당시의 중심인물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서 10가지 재앙이 신화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점을 확실히 해 두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모세와 아론의 족보
아브라함→이삭→야곱→레위
레위 게르손 립 니
시므이
고 핫 아므람 아론 나 답
(요게벳) 모세 아 비 후
미리암(모세누나) 엘르아살
이스할 고라 앗 실
네벡 엘가나
시그리 아비라삽
헤브론
웃시엘 미사엘
엘사반
시드니
므라리 마흘리
무 시
2. 모세와 아론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율법을 주어 친족 간의 결혼을 금지 시켰지만 당시는 율법 전 시대임으로 근친결혼이 율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도 모세의 고모(아버지의 누이)와 결혼했습니다. 이 족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봅시다.
(1)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의 계통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셋째아들 레위의 증손입니다. 또 모세는 유다(야곱과 레아의 넷째아들)나 요셉(야곱과 라헬의 첫째 아들)으로부터 나오지도 아니했습니다. 모세는 아므람의 장자가 아니라 차자(次子)였습니다. 이는 아론의 동생이었으나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여 쓰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단순히 서열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월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영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통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요, 에서가 아니라 야곱, 요셉의 아들 중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이며 여러 손윗 형제들이 아니라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 있을 것이며 그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 기준과는 달리 다양한 훈련과정을 겪게 하고, 또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양성하시어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2) 그렇다고 전혀 영적인 법칙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서열 같은 자연적인 요소는 영적인 요소에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행사에 반드시 그러한 서열이 기본 원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명하고 선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절대 주권으로 선택하시는 것이지 원칙을 무시한 변칙적이고 무절제한 횡포나 변덕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람도 어떤 도구(道具)와 그 도구의 사용 간에는 어떤 일치된 조화가 있습니다. 만들 때부터 제작자의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도 이미 선택하시기 위하여 먼저 자연적인 요소 안에 영적인 요소를 가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엉뚱한 족보외의 인물이 아니라 레위의 한 후손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어가 있기는 하지만 고유한 혈통과 교육의 분위기가 자기의 인간됨의 종류와 질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요소 안에 영적인 요소가 가동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바울이라는 인물도 그저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의 어머니 태에서부터 분리하여 주셨고(갈1:15)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연적으로 유대계통 출신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위한 영적인 가동을 벌써부터 하고 계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은 숙명적으로 성취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숙명적이란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나면서부터 운명을 타고 난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적인 가동을 통하여 백팔십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행사나 선택도 반드시 인간 자유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도덕적 자기 결정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를 들어보면 모세가 르우벤이나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에게서가 아니라 레위에게서 나왔다는 현실은 존경받을 만한 부족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르우벤은 계모를 범한 자였고 시므온과 레위는 사악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습니다.(창49:3-8) 그러나 두형(르우벤과 시므온)의 후손들은 조상의 전철을 답습하다가 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레위족속은 지극한 경건과 열성으로 애굽에서까지도 도덕적 지휘권을 잡을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을 출산시키는 명예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레위 족속은 제사장과 성소 봉사의 임무를 위한 택한 족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에서는 숙명도 없고 우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절대 주권을 가지셨다고 하지만 인간 자유의 법칙과 조화를 무시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인간의 도덕적 자기 결정을 절대 참작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와 같이 경건한 후손의 계열을 따릅니다. 모세와 아론은 경건한 양친 부모의 자녀였습니다. 아버지 아므람의 이름은 “고상한 사람의 친척”이란 뜻입니다. 어머니 요게벳은 “그 영광이 여호와로다”라는 뜻인데 모세의 양친 부모의 이런 이름들은 모세 선조의 경건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그 부모님들의 신앙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찬(예수찬양), 신형(믿음으로 형통)등 이런 이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오는 소년시절의 교훈은 자기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양친 부모의 신앙과 기도는 자녀들의 구원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떻게 그러한 거짓 없고 선한 양심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까?(딤후1:5)
3.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주는 교훈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입니다. 신화(神話)나 그럴싸하게 지어낸 허구적 삼류소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이름을 가진 족보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또 범죄와 회개의 결과입니다. 르우벤은 “이스라엘(야곱)의 장자”였으나(출6:14) 그는 죄로 인하여 장자권을 상실했습니다. 레위도 사악한 자로 아버지의 저주까지 받았으나 경건한 생활을 통해 명예스런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사촌인 고라도 선택된 명단 가운데서 영예롭게도 우월했지만(21-24절) 나중에 반역행위로 스스로 멸하고 말았습니다.(민16장) 그러나 그의 후손은 성전에서 노래를 떠맡는 귀중한 영적 임무를 맡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선택임에 틀림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라자손이 레위 족속으로서 선한 것과의 관계수립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와성소의 기물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참으로 영예스런 특권 회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민4:4-16) 우리도 최고의 선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 유지만 한다면 어떤 영예와 특권이 주어지게 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족(蛇足)d;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4. 또 주저하는 모세
28-30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의 조상의 내력을 기록한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과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할 것을 명(命)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찌 바로가 자기 같은 사람에게 설득 당하겠느냐? 고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자기 생각만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획과 작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 10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조상에게 언약한 말씀을 이루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 자기만 봅니다. 자기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핑계나 이유는 불순종입니다. “하라”고 하셨으면 ‘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임을 믿고 아멘 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출애굽기의 중심 사건인 10가기 재앙이 임하기전 당시의 중심인물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서 10가지 재앙이 신화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점을 확실히 해 두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모세와 아론의 족보
아브라함→이삭→야곱→레위
레위 게르손 립 니
시므이
고 핫 아므람 아론 나 답
(요게벳) 모세 아 비 후
미리암(모세누나) 엘르아살
이스할 고라 앗 실
네벡 엘가나
시그리 아비라삽
헤브론
웃시엘 미사엘
엘사반
시드니
므라리 마흘리
무 시
2. 모세와 아론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율법을 주어 친족 간의 결혼을 금지 시켰지만 당시는 율법 전 시대임으로 근친결혼이 율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도 모세의 고모(아버지의 누이)와 결혼했습니다. 이 족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봅시다.
(1)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의 계통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셋째아들 레위의 증손입니다. 또 모세는 유다(야곱과 레아의 넷째아들)나 요셉(야곱과 라헬의 첫째 아들)으로부터 나오지도 아니했습니다. 모세는 아므람의 장자가 아니라 차자(次子)였습니다. 이는 아론의 동생이었으나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여 쓰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단순히 서열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월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영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통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요, 에서가 아니라 야곱, 요셉의 아들 중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이며 여러 손윗 형제들이 아니라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 있을 것이며 그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 기준과는 달리 다양한 훈련과정을 겪게 하고, 또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양성하시어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2) 그렇다고 전혀 영적인 법칙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서열 같은 자연적인 요소는 영적인 요소에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행사에 반드시 그러한 서열이 기본 원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명하고 선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절대 주권으로 선택하시는 것이지 원칙을 무시한 변칙적이고 무절제한 횡포나 변덕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람도 어떤 도구(道具)와 그 도구의 사용 간에는 어떤 일치된 조화가 있습니다. 만들 때부터 제작자의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도 이미 선택하시기 위하여 먼저 자연적인 요소 안에 영적인 요소를 가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엉뚱한 족보외의 인물이 아니라 레위의 한 후손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어가 있기는 하지만 고유한 혈통과 교육의 분위기가 자기의 인간됨의 종류와 질을 형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요소 안에 영적인 요소가 가동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바울이라는 인물도 그저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의 어머니 태에서부터 분리하여 주셨고(갈1:15)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연적으로 유대계통 출신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이미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위한 영적인 가동을 벌써부터 하고 계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은 숙명적으로 성취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숙명적이란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나면서부터 운명을 타고 난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적인 가동을 통하여 백팔십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행사나 선택도 반드시 인간 자유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도덕적 자기 결정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를 들어보면 모세가 르우벤이나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에게서가 아니라 레위에게서 나왔다는 현실은 존경받을 만한 부족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르우벤은 계모를 범한 자였고 시므온과 레위는 사악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습니다.(창49:3-8) 그러나 두형(르우벤과 시므온)의 후손들은 조상의 전철을 답습하다가 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레위족속은 지극한 경건과 열성으로 애굽에서까지도 도덕적 지휘권을 잡을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을 출산시키는 명예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레위 족속은 제사장과 성소 봉사의 임무를 위한 택한 족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에서는 숙명도 없고 우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절대 주권을 가지셨다고 하지만 인간 자유의 법칙과 조화를 무시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인간의 도덕적 자기 결정을 절대 참작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와 같이 경건한 후손의 계열을 따릅니다. 모세와 아론은 경건한 양친 부모의 자녀였습니다. 아버지 아므람의 이름은 “고상한 사람의 친척”이란 뜻입니다. 어머니 요게벳은 “그 영광이 여호와로다”라는 뜻인데 모세의 양친 부모의 이런 이름들은 모세 선조의 경건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그 부모님들의 신앙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찬(예수찬양), 신형(믿음으로 형통)등 이런 이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오는 소년시절의 교훈은 자기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양친 부모의 신앙과 기도는 자녀들의 구원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떻게 그러한 거짓 없고 선한 양심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까?(딤후1:5)
3.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주는 교훈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입니다. 신화(神話)나 그럴싸하게 지어낸 허구적 삼류소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이름을 가진 족보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또 범죄와 회개의 결과입니다. 르우벤은 “이스라엘(야곱)의 장자”였으나(출6:14) 그는 죄로 인하여 장자권을 상실했습니다. 레위도 사악한 자로 아버지의 저주까지 받았으나 경건한 생활을 통해 명예스런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사촌인 고라도 선택된 명단 가운데서 영예롭게도 우월했지만(21-24절) 나중에 반역행위로 스스로 멸하고 말았습니다.(민16장) 그러나 그의 후손은 성전에서 노래를 떠맡는 귀중한 영적 임무를 맡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선택임에 틀림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라자손이 레위 족속으로서 선한 것과의 관계수립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와성소의 기물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참으로 영예스런 특권 회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민4:4-16) 우리도 최고의 선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 유지만 한다면 어떤 영예와 특권이 주어지게 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족(蛇足)d;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4. 또 주저하는 모세
28-30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의 조상의 내력을 기록한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과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할 것을 명(命)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찌 바로가 자기 같은 사람에게 설득 당하겠느냐? 고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자기 생각만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획과 작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 10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조상에게 언약한 말씀을 이루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 자기만 봅니다. 자기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핑계나 이유는 불순종입니다. “하라”고 하셨으면 ‘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임을 믿고 아멘 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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