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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고민(출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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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6,062회 작성일 07-04-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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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모세가 믿음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아시고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1절)고 말씀하시며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인 줄 너희가 알지라”(7)고 계속 확인시켜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고민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12) 하나님께서 다그치시면 그런 만큼 모세는 더 자신감이 없어 고민하는 것을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의 그런 태도가 매우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확실한 역사적 증거와 현실 속에 입증되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처럼 고민 안 해도 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이적까지 보여 주시며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확인시켜 주셨음에도 모세는 자신의 나약함만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지 맙시다. 그것이 곧 불신이요, 겸손히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해서 모든 일이 승승장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참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연속적으로 난간에 부딪히자 “왜 나를 보내셨나이까?” 고민하며 반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며 모세를 계속 설득하십니다. 실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사42:3)

1. 하나님의 이름(2-3)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과 다릅니다. 대개 사람의 이름은 다른 사람과의 구별을 짓기 위한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창조주 하나님의 인격성과 영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혹 애굽에서 물질 신으로 섬기던 Ammon 정도나 단순히 하늘에(heaven)에 계시는 창조주 shaddai(능력자)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Maza로 알고 있다면 그땐 하나님은 지혜롭거나 또는 풍요하신 분이라는 것이 주된 사상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이름인 El, Elohim Elium, Shaddai Jehovah 등으로 알려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이 잘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오직 한 가지 이름으로 호칭하거나 특수한 이름으로 꼭 짚어 부른다면 여호와(Jehovah: 스스로 계시는 자) 란 이름보다 더 순수하거나 더 고상한 이름이 없을 것입니다. 또 영어 이름으로 God (The Good)보다 더 다정다감한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곧 자존자(自存者)이시며 영원자(永遠者)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하며 변함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자 이십니다.(3:14)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목적하시고 행동하심에 있어서 언제나 한결 같으신 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변성을 의미함은 물론이고 자기 결정적인 자유와 물질 및 정신세계에 있어서의 무제한 통치(지배와 주권)의 속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 여호와는 변역(變易)지 아니하시느니라”(말3: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데서 다 행하셨도다”(시135:5) “上天下地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이 없노라”(신4:39)고 했습니다. 더욱이 여호와는 은혜로운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 노예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는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사40:10)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은 세상에서 우리를 그렇게 능히 구원해 내실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왜 “나의 이름이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는가를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한번 약속을 확인하셨습니다.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어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서 너희를 속량” 하겠다고 했습니다.(6절) 또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 말씀 속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 있습니까?
(1) 하나님의 명예를 건 약속입니다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절대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입니까?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명예를 걸고 실천하셨습니다.
(2) 우리에게는 최고의 특권이며  (3) 또 영원한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모세는 매우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이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이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황한 모세는 하나님께 찾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듣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2) 이스라엘의 기록원(피장)들처럼 모세도 낙담했지만 그러나 그들처럼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시며(5절) 확실한 구출 약속을 해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름 그대로 변개치 않으시고 명예를 걸고 약속을 지키시며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단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모세를 속박한 것들(10-13)
하나님은 거듭 모세에게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 보내게 하라”(10절)고 말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도 말을 안 듣는데 어찌 바로가 듣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입이 둔한 자이기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모세를 그처럼 겁쟁이로 만들었습니까?
(1) 순전히 자기의 노력과 열성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여호와 안에만 있습니다. 기독교는 불교처럼 자력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을 때 인간은 자기 생각이상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한계 때문에 비애를 느끼고 성소를 떠나는 큰 과오를 범합니다.
(2) 선입견(先入見)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시달려 왔고 과거에 속임을 당해 왔으니 이젠 더 이상 달콤한 말에 휘말려 들지 않겠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또 모세대로 자신은 입술이 둔한 자라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라고 하시는데 해도 안 됩니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모세는 스스로 속박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보다 더 위험한 경쟁자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가난은 우리의 정신을 물어뜯고 꼬집습니다. 가난해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영 주저앉혀 버리고 맙니다. 선입견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의 위력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바로 그러한 문제들이 오늘도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염려 근심에 마음이 붙잡혀 버리면 그때 복음의 발판을 찾기가 힘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가난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문제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안 됩니다. 못하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구원을 포기 하셨습니까? 중단하셨습니까? 13절에 보면 아론을 동원시켜 하나님의 뜻을 바로에게 전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을 인도하라고 명령하십니까? 그 일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원망, 불평대신에 기도합시다. 다가 올 축복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연약한 불신앙의 말이 나오지 않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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