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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당케 하신 하나님(출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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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528회 작성일 07-03-2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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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자신은 적격자가 못된다고 계속 변명했습니다.
①“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1) 약한 자신과 강한 바로를 비교하며 겁먹고 못한다고 손을 저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로보다 큰 분이신 자신이 동행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②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리이까(3:13) 하면서 그들이 모세 자신과 하나님을 불신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니라” 너희 조상의 하나님(아브라함, 이삭, 야곱) 여호와라고 확신을 갖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③그들이 그래도 못 믿고 여호와께서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또 반문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이 무엇을 보고 믿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4:1)
④나중에는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기 때문에 부적격자라고 계속 주저했습니다.(4:10) 그 때 하나님은 아론을 함께 보내어 대변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더디 믿고 이리 핑계 저리 핑계 하지 맙시다. 나는 부족하고 능력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미 사용할 작정을 하고 부르셨고 또 감당할 능력과 대책까지 이미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할 때 이미 능력이 보장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과거의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그런 내 생각 때문에 목회를 회피하고 14년여 동안 외도했던 사람입니다. 훈련 받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킨 죄인이었습니다. 한번 부르신 하나님은 끝끝내 사역자로 사용하시고 마신다는 사실을 믿고 여러분은 더 이상 거부하거나 변명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참으시는지 아시기 바랍니다.

1. 모세에게 보여주신 세 가지 이적(1-9)
모세가 네 번째까지 수인(受認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고 불신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거절하자 하나님은 세 가지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1) 첫째  이적-지팡이가 뱀이 됨
그때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셨습니다.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하십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지팡이는 마른 막대기에 불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식물계와 동물계를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애굽사람들에게 있어 뱀은 “왕” 또는 “왕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는 것은 한 사람의 목자가 군왕으로 변한다는 상징이요, 바로에 대한 도전을 상징한 것입니다. 또 모세가 설치는 뱀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볼 때 그 앞에서 바로가 감히 도전하지 못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둘째 이적(6-8절) 문둥병에 걸린 손
이것은 곧 치고 고치는 여호와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그렇지만 당시 애굽사람들은 문둥병이라고 하면 질겁을 냈답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변호를 지긋지긋한 문둥병으로 고통당하기 때문에 쫓아냈다고 한답니다.  모세가 손을 품속에 넣었는데 그때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이란 환경에 부패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권능을 통해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고 건전한 영적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것을 확인시킨 이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가장 지긋지긋한 역병으로 치실 수 있고(미리암, 웃시야, 게아시등) 치시고 또 고칠 수 있음(호6:1)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하며 또 문둥병 같은 마음을 치료받기 원해야 하겠습니다. 또 구속사적으로 생각할 때 첫 사람 아담에 의해 죄가 들어 왔다가 둘째 아담 예수에 의해 해결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느니라”(고전15:21)
(3) 셋째 이적(9절)-전쟁과 파멸 상징
땅에 부은 하수(河水)가 피로 변했다는 것은 전쟁과 파멸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평화가 전쟁으로, 번영이 파괴로, 고요와 평정이 무서운 학살로 변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보복의 예시(豫示)입니다. 후에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실 것을 뜻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가 모세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다가 결국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에게는 최종 승리를 확신케 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강자라도 인간이 전능자와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표징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2. 그래도 거부한 모세(10-13절)
이러한 표징까지 보여주었는데도 실패했던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자기 처지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무능력을 내세워 계속 못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불충성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불충성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부른 사명자는 끝내 사용하십니다. 포기하시려면 아예 부르시지 않습니다. 모세는 말에 능치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부적격자라고 버팁니다. 여러분, 입은 누가 만드셨습니까? 여기 11절에 보면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여호와가 아니뇨?” 이 답답한 친구야! 내가 누구냐? 내가 인간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조성한 자가 아니냐?(사43:1)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그러한 약점을 모르고 부르셨을 리 만무합니다. 모세는 겸손 한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 허약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①웅변이 은사에 대한 가치를 지나치게 과장했습니다
그러나 스테반은 모세를 “말에 능한 자”(행7:22)라고 했습니다. 말의 능력은 웅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듬거린다고 해도 한마디씩 능력 있는 말, 그때그때 꼭 필요한 말을 진심으로 할 때 그 사람이 진정 말에 능한 자 인줄 믿습니다. 행위가 수반된 말이 능력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유창하게 못한다고 자신을 과소평가 했던 것입니다.
②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이미 자신의 약점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약점을 보완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③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 주실 때는 적어도 내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목적대로 쓰시고자 도와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④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약한데서 영광스럽게 드러납니다.
⑤허약성 그 자체가 하나님의 종인 자신에게 흔히 유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겸손하며 기도에 더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말에는 졸한 사람이었습니다.(고후11:6) 그러나 그의 말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게 했습니다.(고후2:4,5) 우리는 모세처럼 자기의 약점과 허약성만 생각하고 거절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다 아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3. 끝내 모세를 일꾼으로 사용하신 하나님(14-17)
말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말도 주십니다.(11절)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필요시에 할 말을 주겠노라(막10:19)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끈질긴 주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고집부리는 모세보다 더 참으셨습니다. 책망하는 말씀은 한마디로 없었습니다. 모세의 고집에 하나님도 질릴 만 합니다. 떨기나무의 이적부터 방금 보여준 세 가지 이적들을 보면서도 불신하는 모세를 생각하면 기가 막힐 지경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시고 모세를 일꾼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모세의 대변인으로 세워 주심으로서 모세의 약점을 메꾸어 주셨습니다. 그때서야 모세는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시작합니다. 물론 형제가 연합하여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귀하지만(시133편) 하나님의 보장보다 형의 도움에 더 만족했던 모세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형 아론의 불신앙 때문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큰 재앙을 겪어야 했습니까?(출32:21)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 인간적인 인정이나 감정에 비롯된 연합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의 무능력을 내세워 사명을 거부한다고 해도 끝까지 인내하심으로 반드시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 하며 기쁨으로 충성되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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