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출생(출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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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상의 영웅전기를 보면 출생부터 비범한 사건을 제시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크게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출생된 모세는 별로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모세의 출생은 지극히 평범하고 간단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대나라의 건국자요, 독립자요, 율법 수여자이며 예언자인 모세는 그렇게 애굽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조차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6:20절에서 잠간 거명됨) 그러나 폭군에 의해 내려진 칙령 때문에 출생 시부터 드릴(thrill) 있는 주목(注目)을 받게 됩니다. “남자아이를 출산하면 죽이라”(1:16)는 법령 앞에 이 아이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죽게 될 것인가? 우리를 오싹하게 하고 있습니다.
1. 섭리의 아들 모세
왕의 명령은 모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모세만큼 출생 시 부모의 신앙에 긴장을 던져준 아이도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어머니 요게벳의 애정은 강렬했습니다. 그래서 석달을 숨겨서 길렀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부모의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보통 사람 같지 않게 준수하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행7:20)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단순히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신적 기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외모는 피부로 나타는 미보다도 살갗 속에 들어있는 신적성품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미모도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아름다운 용모(에스더2:7)로 민족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만 사람에게 뛰어난 용모였으나(시45:2) 그 장점(merit) 때문에 천첩(千妾)을 거느렸지 않습니까? 모세의 부모들은 아이에게서 성령이 함께 하심을 볼 줄 아는 신앙의 안목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출생부터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태어났던 것이니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부모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부모에게 양육 받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결혼도, 자녀 양육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선택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2. 하수(河水)에 버려진 모세
부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은 핏덩어리 때도 정이 드는 것인데 석 달이나 자라 벙실벙실 웃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러나 더 이상 숨기다가는 가족 전체의 생명이 위험하니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부모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갈대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역청을 발라 그 속에 아이를 넣고 나일 강에 띄었습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을 때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가슴 아픈 이 사연들은 사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잔인무도한 왕의 칙령도 자녀들의 유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악법이 없었더라면 모세가 바로의 궁정에서 교육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강에 버려졌을 때 바로의 딸(아멘호텝 Ⅰ세의 딸 핫셉슈트)에게 발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강가에 나오게 했고 상자를 열자 아이가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딸에게 동정심을 유발시켜 아이에게 정을 느끼게 하셨던 것입니다. 떠내려가는 동생을 걱정하며 멀리서 지켜보던 누이 미리암은 양육을 걱정하는 공주에게 유모를 데려오겠다고 자청하여 어머니 요게벳을 자연스럽게 불러와 2년이란 세월을 젖을 빨리며 가슴에 품고 기도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요게벳은 이때 히브리인의 정신을 확실히 심어 줄 수 있었고 모세는 일국의 지도자요, 인도자로서 적격한 품성과 지력을 갖춘 인물로 교육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40년간 왕궁 생활을 하면서 애굽의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모세의 가족이 위대했던 점은 역부족을 느낀 나머지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 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죽음의 위험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실로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사악한 바로의 가정에서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렇게 양육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바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모세의 교육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택한 백성의 지도자로 양육하기 위하여 공주의 아들이 되게 하신 후(2:16)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서 말과 행사가 능하게 하셨습니다.(행7:22)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해서 세상 학문에 문외한이 되면 안 됩니다. 세상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세상에서 세상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 궁중 교육을 다 배움으로서 애굽 학문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신앙교육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에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서 히브리인의 맥박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나중에 모세의 생애를 종합 해 볼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교육보다도 유년기에 젖을 빨리며 기도했고 묵언으로 교육했던 어머니 요게벳의 교육의 효과를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지식교육보다는 신앙교육, 정신 교육의 효과는 그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
(1) 하나님의 섭리는 목적을 성취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단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벌써 응답하셨고, 왕의 명령, 어머니의 사랑, 아기의 눈물, 소녀(미리암)의 기민성, 공주의 동정심, 애굽의 관습 등을 다 동원하셨습니다.
(2)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의 자유 의지도 동원하여 사용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대행자의 의지도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모세가 바로의 딸의 보호를 받아 구출된 사실, 자기의 친모를 유모로 얻게 된 사실, 공주에 의해 그녀의 자녀로 입적된 사실, 나중에 자기의 지위에 대비한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 이 모든 사실들입니다. 또 시작한 사람의 계획도 쉽게 좌절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그렇게 다 죽이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했던 바로가 오히려 자신의 궁정에서 그 아이 모세를 양육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비록 악해도 선한 것으로 전환시켜 버리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출 사업에 있어서 얼마나 월등하게 우리의 기대를 넘어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아들의 생명만 보존되어도 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상을 넘어 위대한 인물로 교육시키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감히 생각지도 안했던 대복(大福)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주십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구원받는 정도가 아니라 “영생”을 받게 하십니다.(요3:16) 우리는 영예와 영광과 보상까지 받습니다.
1. 섭리의 아들 모세
왕의 명령은 모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모세만큼 출생 시 부모의 신앙에 긴장을 던져준 아이도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어머니 요게벳의 애정은 강렬했습니다. 그래서 석달을 숨겨서 길렀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부모의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보통 사람 같지 않게 준수하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행7:20)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운지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단순히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신적 기품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외모는 피부로 나타는 미보다도 살갗 속에 들어있는 신적성품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미모도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아름다운 용모(에스더2:7)로 민족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만 사람에게 뛰어난 용모였으나(시45:2) 그 장점(merit) 때문에 천첩(千妾)을 거느렸지 않습니까? 모세의 부모들은 아이에게서 성령이 함께 하심을 볼 줄 아는 신앙의 안목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출생부터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태어났던 것이니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부모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부모에게 양육 받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결혼도, 자녀 양육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선택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2. 하수(河水)에 버려진 모세
부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은 핏덩어리 때도 정이 드는 것인데 석 달이나 자라 벙실벙실 웃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러나 더 이상 숨기다가는 가족 전체의 생명이 위험하니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부모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갈대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역청을 발라 그 속에 아이를 넣고 나일 강에 띄었습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을 때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가슴 아픈 이 사연들은 사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잔인무도한 왕의 칙령도 자녀들의 유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악법이 없었더라면 모세가 바로의 궁정에서 교육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강에 버려졌을 때 바로의 딸(아멘호텝 Ⅰ세의 딸 핫셉슈트)에게 발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강가에 나오게 했고 상자를 열자 아이가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딸에게 동정심을 유발시켜 아이에게 정을 느끼게 하셨던 것입니다. 떠내려가는 동생을 걱정하며 멀리서 지켜보던 누이 미리암은 양육을 걱정하는 공주에게 유모를 데려오겠다고 자청하여 어머니 요게벳을 자연스럽게 불러와 2년이란 세월을 젖을 빨리며 가슴에 품고 기도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요게벳은 이때 히브리인의 정신을 확실히 심어 줄 수 있었고 모세는 일국의 지도자요, 인도자로서 적격한 품성과 지력을 갖춘 인물로 교육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40년간 왕궁 생활을 하면서 애굽의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모세의 가족이 위대했던 점은 역부족을 느낀 나머지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 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죽음의 위험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실로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사악한 바로의 가정에서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렇게 양육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이바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모세의 교육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택한 백성의 지도자로 양육하기 위하여 공주의 아들이 되게 하신 후(2:16)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서 말과 행사가 능하게 하셨습니다.(행7:22)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해서 세상 학문에 문외한이 되면 안 됩니다. 세상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세상에서 세상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 궁중 교육을 다 배움으로서 애굽 학문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신앙교육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에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서 히브리인의 맥박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나중에 모세의 생애를 종합 해 볼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교육보다도 유년기에 젖을 빨리며 기도했고 묵언으로 교육했던 어머니 요게벳의 교육의 효과를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지식교육보다는 신앙교육, 정신 교육의 효과는 그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
(1) 하나님의 섭리는 목적을 성취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단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벌써 응답하셨고, 왕의 명령, 어머니의 사랑, 아기의 눈물, 소녀(미리암)의 기민성, 공주의 동정심, 애굽의 관습 등을 다 동원하셨습니다.
(2)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의 자유 의지도 동원하여 사용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대행자의 의지도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모세가 바로의 딸의 보호를 받아 구출된 사실, 자기의 친모를 유모로 얻게 된 사실, 공주에 의해 그녀의 자녀로 입적된 사실, 나중에 자기의 지위에 대비한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 이 모든 사실들입니다. 또 시작한 사람의 계획도 쉽게 좌절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그렇게 다 죽이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했던 바로가 오히려 자신의 궁정에서 그 아이 모세를 양육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비록 악해도 선한 것으로 전환시켜 버리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출 사업에 있어서 얼마나 월등하게 우리의 기대를 넘어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아들의 생명만 보존되어도 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상을 넘어 위대한 인물로 교육시키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감히 생각지도 안했던 대복(大福)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주십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구원받는 정도가 아니라 “영생”을 받게 하십니다.(요3:16) 우리는 영예와 영광과 보상까지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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