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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도강과 광야길(출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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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953회 작성일 07-07-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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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으로 가는 행군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반대방향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라암셋에서 가나안으로 해변도(길이 328km)를 타고 가면 6,7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최소한 200마일(320km)이상 더 되는 시내 반도의 먼 지점까지 이끌고 갔습니다. 신1:2절에 보면 “호렙산에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하루 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40년 동안을 사막에서 방랑하며 지내도록 했고 애굽에서 가장 먼 동쪽으로부터 돌아서 에돔과 모압과 헤스본 지방을 거쳐 여리고로 인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위대함을 천하 만민에게 보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상은 모세가 인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밤낮 꾸준히 인도하셨던 것입니다.(21절)

1.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본질(본질)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시103:4) 이들의 체질은 블레셋 사람에게 시험을 당하면 되돌아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17절)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의 힘에 알맞은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또 감당치 못할 때는 이길 힘도 주십니다.(고전10:13) 시련과 유혹은 그것은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증가됨에 비례해서 더해지게 됩니다.
(2) 광야는 길이 없습니다. 물도 없고, 일정한 정착민도 없는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하여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야 길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겸손 훈련,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직통 코스로 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울 첫 과목은 전쟁뿐이었을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신8:2-4)) 여기서 얻을 교훈은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정해 주신 코스로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름길을 발견했다고 인간의 지혜나 꾀로 그 길을 달려가다가는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코스를 거쳐야 합니다.(마5:10-12)

2. 요셉의 해골을 취한 자손들(19절)
요셉은 이미 400년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출애굽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50:24-26)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총리로서 찬란한 업적을 남긴 애굽에 자기의 뼈를 묻기보다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인 만큼 소수민족이고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묻히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요셉의 신앙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위에 존재했습니다. 자기의 해골을 처리하는 요셉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단지 영혼만 보증 받으면 되는데 몸이 눕게 될 것을 부탁함은 무슨 일입니까?? 그것은 부활의 희망과 상당한 관련이 있었다고 봅니다. 신도들의 육체는 신성한 공탁물(供託物)입니다. 영광을 받도록 분리되어진 영혼은 경의를 표하기에 적합하고 그리스도의 주권에 주어지는 장소에 놓여지는 것이 온당합니다.

3. 그들과 동행하신 하나님(출13:20-2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과정은 어떻습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役事)와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또 그들이 갈 길로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자신을 인도자로 삼았습니다. 아니 하나님 자신이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빛은 시련의 어두움을 밝히시기에 충분합니다. 시련의 뒤에는 영광으로 위로 받는 시기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어주신 구세주 이십니다. 하나님은 피곤한 황무지, 건조하고 지루한 광야길, 길도 신호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 길이었지만 하나님은 직접 함께 하시고 방향을 제시(提示)하시고, 그들을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승천 하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무더위를 가리워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길을 밝혀 주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주십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불과 구름 기둥 안에서처럼 명백합니다. 오늘이 우리 앞에서 비추시는 빛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005절) 그러므로 신자들은 마음대로 가면 안 됩니다.(골3:17)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때에 따라 직선거리보다 시련과 고난을 동반한 우회 도로가 결국 우리를 유익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과 구름 기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광야의 끝”에서 라고 했는데 이쪽에서 보면 광야가 시작되는 지점인 것입니다. 그들이 사막을 여행한 후에야 사라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한시 반시도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휴거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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