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계명(살인하지 말 것)(출20: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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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계명부터는 둘째 돌판에 기록된 내용으로 살인과 간음, 도적질, 이웃에 대한 거짓증거, 탐욕 등 이 다섯 계명들은 “하지 말라”는 강력한 부정(否定)명령 이라는 점에 절대 유의해야 합니다.
이 계명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조건 금지명령(禁止命令)이 아닌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곧 우리가 이웃을 그만큼 소중이 여기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나 자신과 동등한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는 나도 중요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켜 구원하실 만큼 가치를 두고 계십니다. 그들은 우리가 베풀도록 구속(救贖)되고 또 나와 동등하게 기대되고 같은 권리를 가진 대상임을 확실히 지적해 주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계명의 입법 취지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1. 살인의 종류(13절)
(1) 계획적인 살인 : 살의(殺意)를 가지고 죽게 한 고의(故意)적 살인을 말합니다.
직간접적인 고의적 살인 행위입니다.
(2) 과실치사 : 부주의와 태만의 결과로 발생된 살인입니다.
예를 들면 집을 설계 건축하는 자가 배수 시설의 미비로 인하여 거주하는 자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 같은 것입니다. 또는 전염병을 자식들에게 퍼뜨려 그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에게 감염시키는 경우나 시설물을 부주의하게 관리하여 인명을 잃게 하는 경우 등입니다.
(3) 비(非)행위적인 살인(간접살인) : 조금만 선을 행하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방관하거나 회피함으로 발생된 살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없다고 모른 체 하다 이웃이 다른 사람들을 계획적으로나 또는 부주의로 살인하도록 허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하여 항상 직간접적인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 구원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악한자라도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겔3:18절) 가인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대답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바로 그렇다”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소홀히 하여 잃게 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가인의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2. 미워하는 마음(요일3:15)
요한1서 3: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평상시 친절하지 못한 생각이나 사상은 곧 악한 생각이 되고 악한 생각은 악 영향을 끼쳐 마음속에 살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연쇄적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열등의식이나 자기 학대 등으로 비화할 수 있고 나아가서 정신이상이나 폭력적 성격으로 더 큰 사회악을 초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좀 싫어서 불친절하고 미워한 작은 행동은 그것 때문에 태풍 같은 폭발력이 사회에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관심과 부주의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은 아직도 폭발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 지어다”(잠언23:26)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계명을 제정하고 경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깊이 묵상합시다. 상대방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불쾌하게 했으니 그 사람이 나쁘다고 내가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에게 처우했건 나는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특별한 살인
바로 그것은 자살입니다. 내가 내 목숨 끊는데 누가 시비냐? 고 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악한 생각입니다. 또 잘못된 판단입니다. 내 몸, 내 생명이 내 것입니까? 자기가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드는 도전행위입니다. 그것은 자기만 도피하려는 비겁한 짓이며,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당할 가족과 이웃과 형제는 얼마나 마음 아프겠습니까? 어떠한 이유로도 자살은 동정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입니다. 직간접적으로 남을 죽이는 행위도 절대 금해야 하겠지만 자신의 생명도 잘 보호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과 영혼을 잘 관리하여 값지게 사용합시다.
4.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형법에서는 이런 경우를 “위법성 지각 사유”라고 합니다. 예외적으로 살인이 허용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전쟁으로 인한 살인
신명기서 20장에 보면 영생을 수호하기 위하여 하나님 없는 우상 숭배자를 멸하기 위한 전쟁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말씀하고 있으며, 사무엘상에 보면(삼상15:3) 사울왕에게도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군병의 존재를 인정했고 강포하지 말고, 무소(誣訴: 거짓고소)하지 말라고만 주의 시키셨습니다. 곧 공의를 목표로 한 의로운 전쟁은 살인이 될 수 없으나 약탈을 위한 침략전쟁은 불의한 것이며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그러한 전쟁은 부정하고 있습니다.(제4조) 반전주의자들은 평화 지향주의자들 같고 고상한 인격주의자들 같으나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무질서와 무정부적인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2) 법에 의한 사형집행
성경에도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피를 흘릴것이니”(창9:6)했습니다. 요즈음 사형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옳고 그름을 단적으로 편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오판으로 죽을 수도 있고, 감정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로 억울한 사형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살인자도 얼마든지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극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생명을 잃은 선량한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같은 범죄 예방차원에서라도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성경정신은 사회 질서 유지와 평화를 소중히 여기여 재범방지를 위한 사형 제도를 묵과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살인죄를 범하지 않는 적극적 방법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그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열기 이상 증오하는 원수의 가슴을 녹이는 약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20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인류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분노를 예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5:23-24)
죄의 고백 없이 예물의 효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므로 제 여섯번째 계명을 지키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 계명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조건 금지명령(禁止命令)이 아닌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곧 우리가 이웃을 그만큼 소중이 여기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나 자신과 동등한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는 나도 중요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켜 구원하실 만큼 가치를 두고 계십니다. 그들은 우리가 베풀도록 구속(救贖)되고 또 나와 동등하게 기대되고 같은 권리를 가진 대상임을 확실히 지적해 주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계명의 입법 취지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1. 살인의 종류(13절)
(1) 계획적인 살인 : 살의(殺意)를 가지고 죽게 한 고의(故意)적 살인을 말합니다.
직간접적인 고의적 살인 행위입니다.
(2) 과실치사 : 부주의와 태만의 결과로 발생된 살인입니다.
예를 들면 집을 설계 건축하는 자가 배수 시설의 미비로 인하여 거주하는 자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 같은 것입니다. 또는 전염병을 자식들에게 퍼뜨려 그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에게 감염시키는 경우나 시설물을 부주의하게 관리하여 인명을 잃게 하는 경우 등입니다.
(3) 비(非)행위적인 살인(간접살인) : 조금만 선을 행하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 방관하거나 회피함으로 발생된 살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나와 상관없다고 모른 체 하다 이웃이 다른 사람들을 계획적으로나 또는 부주의로 살인하도록 허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하여 항상 직간접적인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 구원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악한자라도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겔3:18절) 가인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대답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바로 그렇다”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소홀히 하여 잃게 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가인의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2. 미워하는 마음(요일3:15)
요한1서 3: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평상시 친절하지 못한 생각이나 사상은 곧 악한 생각이 되고 악한 생각은 악 영향을 끼쳐 마음속에 살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연쇄적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열등의식이나 자기 학대 등으로 비화할 수 있고 나아가서 정신이상이나 폭력적 성격으로 더 큰 사회악을 초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좀 싫어서 불친절하고 미워한 작은 행동은 그것 때문에 태풍 같은 폭발력이 사회에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관심과 부주의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은 아직도 폭발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 지어다”(잠언23:26)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계명을 제정하고 경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깊이 묵상합시다. 상대방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불쾌하게 했으니 그 사람이 나쁘다고 내가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에게 처우했건 나는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특별한 살인
바로 그것은 자살입니다. 내가 내 목숨 끊는데 누가 시비냐? 고 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악한 생각입니다. 또 잘못된 판단입니다. 내 몸, 내 생명이 내 것입니까? 자기가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드는 도전행위입니다. 그것은 자기만 도피하려는 비겁한 짓이며,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당할 가족과 이웃과 형제는 얼마나 마음 아프겠습니까? 어떠한 이유로도 자살은 동정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입니다. 직간접적으로 남을 죽이는 행위도 절대 금해야 하겠지만 자신의 생명도 잘 보호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과 영혼을 잘 관리하여 값지게 사용합시다.
4.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형법에서는 이런 경우를 “위법성 지각 사유”라고 합니다. 예외적으로 살인이 허용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전쟁으로 인한 살인
신명기서 20장에 보면 영생을 수호하기 위하여 하나님 없는 우상 숭배자를 멸하기 위한 전쟁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말씀하고 있으며, 사무엘상에 보면(삼상15:3) 사울왕에게도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군병의 존재를 인정했고 강포하지 말고, 무소(誣訴: 거짓고소)하지 말라고만 주의 시키셨습니다. 곧 공의를 목표로 한 의로운 전쟁은 살인이 될 수 없으나 약탈을 위한 침략전쟁은 불의한 것이며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그러한 전쟁은 부정하고 있습니다.(제4조) 반전주의자들은 평화 지향주의자들 같고 고상한 인격주의자들 같으나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무질서와 무정부적인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2) 법에 의한 사형집행
성경에도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피를 흘릴것이니”(창9:6)했습니다. 요즈음 사형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옳고 그름을 단적으로 편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오판으로 죽을 수도 있고, 감정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로 억울한 사형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살인자도 얼마든지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극악한 사람들에 의하여 생명을 잃은 선량한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같은 범죄 예방차원에서라도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성경정신은 사회 질서 유지와 평화를 소중히 여기여 재범방지를 위한 사형 제도를 묵과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살인죄를 범하지 않는 적극적 방법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그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열기 이상 증오하는 원수의 가슴을 녹이는 약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20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인류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분노를 예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5:23-24)
죄의 고백 없이 예물의 효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므로 제 여섯번째 계명을 지키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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