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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보호하는 율례(출22:21-27,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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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903회 작성일 08-01-06 13:20

본문

본문의 율례 속에서도 하나님의 온유하심의 실례를 느낄 수 있습니다.이방인, 과부, 고아, 가난하자를 보호하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며 그들이 소외당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엄격한 심판을 하시겠다고 했습니다.(24절)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27절)고까지 소개하고 계십니다.

1.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21절)
이방 나그네는 피, 언어, 종교가 다른 외국 땅에 거주하는 자로 자국의 행정부나 친척 또는 종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너희도 과거 애굽에서 그런 압제와 학대를 받아보지 않았느냐? 옛말에 “과부가 과부 사정 안다”고 했든지 고생 해 본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몰라주면 되겠느냐고 단속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23:9)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시집살이 해 본 사람이 더 시집살이 시키고, 군대에서 고참에게 얻어맞은 사람들이 신참을 더 괴롭힙니다. 대개 그때 받은 상처를 그런 방법으로 보상 받으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해하시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 없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위요, 사랑 없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율법서 에서도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인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렘19:34)고 명령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번제를 드릴 때에는 회막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도록 하였고 (레17:8-9), 또 할례를 받으면 본토인처럼 유월절도 지키게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출12:48-49) 그렇습니다. 기독교를 잘 모르고 비판하고 독선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방인들에게도 우리는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 사랑을 또한 전해 주어야 합니다.(요1서4:11)

2.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말 것(22-24절)
성경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과부의 처지에 깊은 동정심을 나타내고 계시며 주님께서도 특별히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딱한 탄식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룻1:20) 사르밧 과부에게는 죽은 자식을 되돌려 받게 했고(왕상 17:9-24), 나인성 과부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과부에게 특별한 배려를 베푸셨습니다.(행6:1, 딤전5:3-9, 16) 또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고 했습니다. 또 신24:17절의  규례를 보면 이웃의 옷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저당 잡을 수 있으나 과부의 옷만은 어떠한 경우에도 저당 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곡식이나 과실을 추수할 때도 전부 추수하지 말고 그것을 남겨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게 하라(신24:19-21), 또 특별히 어려운 송사를 당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이시며”(시68:5)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시10:14)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호자가 없이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서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므로 아끼고 보호해야 할 것을 규례로 정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러한 명을 거부할 때는 “하나님의 노가 맹렬함으로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22:24)고 강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께서 경고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3. 가난한자에 대한 경제적 보호(25-27절)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은 소유에 있어서 공평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일 수 있습니다. 모두 공평하다면 세상은 발전과 진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신15:11)했고 “가난한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요12:8)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1) 부자가 가난한자에게 이자(利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금지 했습니다.(레25:35-38)
또 가난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신15:7-11) 성경은 고리대금업을 원칙적으로 정죄하였으며 (겔18:13, 22:12) 의로운 사람은 해서는 안 될 일로 규정하였습니다.(시15:5) 이 입법취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잠깐 동안 맡기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하며 이웃의 지극히 필요한 바를(생존권 문제)이용하여 자기 재산을 증식시키는 기회로 삼는 것은 선민(성도)으로서 온당치 못함을 경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역 이용하여 생활이 어렵다는 구실로 남의 돈을 빌려 쓰고 갚지 않거나 오히려 더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악행을 한다고 비판받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벧전2:12)
(2) 이웃의 옷을 전당 잡았을 경우(26-27절)
전당을 잡고 현금을 빌려주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활필수품을 전당 잡는 것은 금하였습니다.(신24:6)
가난한자의 옷은 전당 잡지 말되 잡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26절)) 당시 유대인의 옷은 넓은 모직천이나 모포 같은 것으로 낮에는 의복으로 사용하되 밤에는 이불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따뜻한 곳에서 자면서 입고 덥고 잘 것이 없는 가난한자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냉담한 인간성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조금 여유 있는 형제가 가난한 형제를 돌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할 목적으로 현금을 대부하는 것을 금할 것이 없습니다. 장사해서 이윤을 얻었다면 이윤의 댓가를 합법적으로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법에서 우리는 약자를 보호하고 약한 것을 이용하여 부당한 착취를 당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와 약할 때 서로를 도와주며  사랑으로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려는 자비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활이란 변화무쌍합니다. 언제 양지(陽地)가 음지(陰地)되고 음지가 양지 될지 모르듯 형편이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여유 있을 때, 힘 있을 때 도와주고 또 내가 약할 때 도움 받으며 아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이 세상의 선을 담당 하도록 마음 먹읍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가난한자나 부자를 막론하고 보호하기 위한 이성적이고 의롭고 실질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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