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든 두돌판(출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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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끈기 있고 열심히 드린 중재는 백성들을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여 (33:7절)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했습니다.(14절)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언약을 다시 세우는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첫 단계가 돌 판을 재제작(再製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돌 판은 한 가지 영광을 잃고 만들어졌으니 처음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으나 (32:16절) 이번 것은 모세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어쩌든 그 언약은 곧 율법과 규정된 예배의식의 근본으로서 언약의 정수(精髓)인 것입니다.
1. 두돌판에 새긴 언약(1-4절)
하나님은 모세의 간절한 세 번(출32:11-14, 32:30-35, 33:7-23)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에게 돌아오셨고 이제 파기된 계약을 갱신하기 위하여 모세에게 계약서나 다름없는 돌 판을 가져오라고 하셨으므로 모세는 두돌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명령을 재차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6-7절) 이에 모세는 엎드려 네 번째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9절) 모세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파기된 계약을 다시 세우사 전에 언약(출19:5-6, 출6:7)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의 나라요, 거룩한 백성의 영광을 회복시켜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약은 당사자 서로 간에 책임과 의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그들의 생활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자들과 더블어서만이 언약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은총과 보상을 즐기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다시 만든 돌 판에 새긴 언약은 처음 판에 있던 내용과 동일했습니다.(1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뜻)의 불변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함이로다”(마5:17)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행위로 부순 것을 복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하나님은 우리가 깨뜨린 계약은 우리가 다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의무인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회복은 나 자신이 깨뜨린 것을 복구해야 합니다.
2. 산에 올라올 것을 명령하심(1-4절)
하나님께서 돌 판을 깎아 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은 모세의 중재를 통하여 언약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라고 호출하신 것은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바로 전에 모세가 “주여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33:18절) 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중재를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3절에서 산을 성결케 보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교제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예배드릴 때 잡된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소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온 산에 인적(人跡)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땅에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입니다.(출3:5절 비교)
3. 나타내신 이름(4-8절)
하나님께서 구름가운데 강림하시여 모세와 함께 거기 서거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셨습니다. 33:22절처럼 주님께서 그의 영광을 잠간 보여주셨습니다.(6절)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여호와 로라, 여호와 로라” 강조하시며 자신의 성품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했습니까?(6-7절) 긍휼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자비하신 속성이 압도적입니다.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선함과 거룩함의 연합입니다. 사랑은 긍휼과 자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하시기에 악을 용납하지 못하며 거룩하시기 때문에 추한 것을 간과하지 못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고 형벌 받을 자를 면죄하시지 않으십니다. 삼사 대까지라도 죄의 뿌리를 확실히 뽑아 버리시고 마시는 것입니다.(7절하단)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한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고개도 못들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간청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얻고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삶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신하며 항상 그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요 예배인 것입니다.
4. 본문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
미디안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실 때 자존자(自存者) 곧 스스로 계셔서 계신 분(I am that I am)(출3:1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①영원성 ②시작이 없으며 ③절대적이며 ④부족함이 없고 ⑤전능하신자라는 특성을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는 그의 긍휼하심과 의로움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은 자존(自存)하시고 영원불변하시며 만물의 근본이 되시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으로 그분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하신 자의 도덕적 성품을 깨닫고 배우는 일이 뒤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진실하십니다.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용서해 줄 수 없는 죄악도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1서 5:16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심이 영원하십니다.(시117:2절) 그래서 주의 진실은 궁창(穹蒼)에 미친다고 했습니다.(시108:4절) 하나님은 악은 3,4대까지 이르게 하지만(34:7절) 인자는 영원까지 베푸신다고 했습니다.(시103:17절 비교) 또 심판은 그의 일이되 그의 비상한 일이라고 했습니다.(사28:21절)
그러나 새 돌 판은 한 가지 영광을 잃고 만들어졌으니 처음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으나 (32:16절) 이번 것은 모세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어쩌든 그 언약은 곧 율법과 규정된 예배의식의 근본으로서 언약의 정수(精髓)인 것입니다.
1. 두돌판에 새긴 언약(1-4절)
하나님은 모세의 간절한 세 번(출32:11-14, 32:30-35, 33:7-23)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에게 돌아오셨고 이제 파기된 계약을 갱신하기 위하여 모세에게 계약서나 다름없는 돌 판을 가져오라고 하셨으므로 모세는 두돌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명령을 재차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6-7절) 이에 모세는 엎드려 네 번째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9절) 모세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파기된 계약을 다시 세우사 전에 언약(출19:5-6, 출6:7)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의 나라요, 거룩한 백성의 영광을 회복시켜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약은 당사자 서로 간에 책임과 의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그들의 생활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자들과 더블어서만이 언약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은총과 보상을 즐기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다시 만든 돌 판에 새긴 언약은 처음 판에 있던 내용과 동일했습니다.(1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뜻)의 불변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함이로다”(마5:17)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행위로 부순 것을 복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하나님은 우리가 깨뜨린 계약은 우리가 다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의무인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회복은 나 자신이 깨뜨린 것을 복구해야 합니다.
2. 산에 올라올 것을 명령하심(1-4절)
하나님께서 돌 판을 깎아 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은 모세의 중재를 통하여 언약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라고 호출하신 것은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바로 전에 모세가 “주여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33:18절) 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중재를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3절에서 산을 성결케 보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교제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예배드릴 때 잡된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소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온 산에 인적(人跡)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땅에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입니다.(출3:5절 비교)
3. 나타내신 이름(4-8절)
하나님께서 구름가운데 강림하시여 모세와 함께 거기 서거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셨습니다. 33:22절처럼 주님께서 그의 영광을 잠간 보여주셨습니다.(6절)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여호와 로라, 여호와 로라” 강조하시며 자신의 성품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했습니까?(6-7절) 긍휼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자비하신 속성이 압도적입니다.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선함과 거룩함의 연합입니다. 사랑은 긍휼과 자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하시기에 악을 용납하지 못하며 거룩하시기 때문에 추한 것을 간과하지 못하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고 형벌 받을 자를 면죄하시지 않으십니다. 삼사 대까지라도 죄의 뿌리를 확실히 뽑아 버리시고 마시는 것입니다.(7절하단)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한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고개도 못들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간청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얻고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삶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신하며 항상 그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요 예배인 것입니다.
4. 본문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
미디안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실 때 자존자(自存者) 곧 스스로 계셔서 계신 분(I am that I am)(출3:1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①영원성 ②시작이 없으며 ③절대적이며 ④부족함이 없고 ⑤전능하신자라는 특성을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는 그의 긍휼하심과 의로움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은 자존(自存)하시고 영원불변하시며 만물의 근본이 되시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으로 그분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하신 자의 도덕적 성품을 깨닫고 배우는 일이 뒤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진실하십니다.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용서해 줄 수 없는 죄악도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1서 5:16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심이 영원하십니다.(시117:2절) 그래서 주의 진실은 궁창(穹蒼)에 미친다고 했습니다.(시108:4절) 하나님은 악은 3,4대까지 이르게 하지만(34:7절) 인자는 영원까지 베푸신다고 했습니다.(시103:17절 비교) 또 심판은 그의 일이되 그의 비상한 일이라고 했습니다.(사28: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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