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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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번 주에 살펴보았던 요한복음 8:1-11 절의 내용을 다시 한번 돌아봄으로 곱배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주홍글씨"라는 나다니엘 호손이 쓴 미국 근대 소설을 소개하면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헤스터라는 아름다운 처녀는 부모님들의 강요로 늙고 못생긴 의사 칠링워스란 사람과 사랑없는 결혼을 하게됩니다.
이 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는데, 배타고 가는 도중 칠링워스는 사고로 죽고 맙니다.
팔자에도 없는 생과부가 되어 미국 땅에서 열심히 살던 도중 난데없이 딸을 낳게됩니다.
문제는 아이의 아빠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시간 계산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옵니다.
남편이 죽은지도 이미 몇 년이 흘러서 남편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이런 천부당만부당 할 일이 생겼다고 분노하며 헤스터를 법정에 세우고 애기 아빠가 누구냐고 심문합니다.
헤스터는 무슨 일인지 절대도 입을 열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 벌로 "A" 간음, Adultary 의 첫 글자를 가슴에 달고 살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A 자를 달고사는 헤스터를 조롱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런데도 헤스터는 열심히 사람들을 돕고 착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죽은 줄 알았던 남편 칠링워스가 살아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내의 부정에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 올랐습니다.
그는 아내 헤스터를 용납하지 않고 이혼을 선언했으며, 그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아내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마을의 젊고 유능한 인정받은 꽃미남 목사 딤즈데일이 고통스럽게 기도하는 것을 듣게되고 그 아이의 아빠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목사 딤즈데일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워낙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딤즈데일을 다짜고짜 고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요즘같이 D.N.A. 검사로 없던 시절에 목사 딤즈데일이 그 천인공노할 간음죄의 당사자라고 함부로 주장했다가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찍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칠링워스는 딤즈데일에게 발신자 없는 편지를 보내고 쪽지를 남기는 등 갖은 협박으로 딤즈데일을 괴롭힙니다.
동시에 물적 증거를 확보하기위해 딤즈데일의 주치의 노릇을 하며 이런저런 인생상담도 나누며 거짓으로 접근합니다.
결국 딤즈데일은 너무나 괴로운 마음에 점점 지쳐가며 몸도 마음도 쇠약해 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지사 선거 축사 설교를 맡게되는 영애로운 자리에서
그의 생애 최고의 명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스터와 그 사이에서 낳은 딸 펄을 양 손에 잡고 처형대 위에 올라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눈을 감게됩니다.
이 사건 후 헤스터와 펄을 마을을 떠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칠링워스는 웬일인지 시름시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헤스터와 칠링워스 그리고 딤즈데일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헤스터는 일평생 간음죄라는 표시를 가슴에 달고 살았지만 발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목사 딤즈데일은 인정받고 명망높은 젋고 잘생긴 목사로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의 죄를 밝히고 헤스터와 자신의 딸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과 양심으로인해 남모르는 고통에 시달리다 칠링워스의 갖은 협박과 공포로 그의 내면은 초토화 되버리고 말았고 결국엔 그의 육체까지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칠링워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헤스터의 딸 펄의 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져야만 세상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그의 인생까지도 망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헤스터의 모습으로 평생 간음죄의 멍에를 가슴에 걸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짜 불쌍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감추고 착한 척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목사 딤즈데일 일 것입니다.
소설 말미의 클라이막스에서 목사 딤즈데일은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헤스터와 자신의 딸 펄의 손을 잡고 처형대 위에 섭니다.
그로인해 그는 잘나가는 목사로서 그가 쌓은 명성과 존경 등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딸의 이름 펄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펄은 "진주" 로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 장에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팔아 진주를 얻은 상인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목사 딤즈데일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진주" 인 그의 딸 펄을 되찾음으로 참된 안식과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불쌍한 사람은 칠링워스일 것입니다.
그의 행복은 철저하게 목사 딤즈데일에게 달려있었습니다.
딤즈데일의 죄악이 드러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 그가 불행해져서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요,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딤즈데일의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는 그 의미를 허무하게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행복음 철저하게 "주님" 한 분 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돈, 부귀, 영화, 명예, 쾌락, 인기로 우리를 감출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줌의 진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인것을 고백하고 용서받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주홍글씨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홍글씨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포기해서라도 바꿀 수 없는 진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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