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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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36절~47절 김정범 목사
예수님은 4 장에서 유대인들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를 통해 갈릴리로 되돌아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신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저번 방문 때 성전 정화 작업을 하셨던 곳인 양문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38년된 병자를 말씀 한마디로 고치셨습니다.
본 장 첫 부분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의 이야기는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천사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 천사가 내려와서 병을 고쳐주었을 수도 있고,
사도 요한이 그 때 당시 시중에 나도는 전설을 그대로 인용하였을 수도 있으며,
병고침 받은 병자의 개인적인 신념을 그대로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은 더 이상한 부분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6절에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는가 라고 물으십니다.
38년은 아니더라도 38일만이라도 아파온 사람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낫기를 원하느냐 묻는다면 아마 뺨부
터 맞을 겁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놀라웁게도 아파도 그냥 버티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병을 키우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이 낫기를 원하는가의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38년된 나쁜 습관의 병이 있습니다.
38년된 위선과 교만의 병이 있습니다.
38년된 탐욕과 거짓의 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병들을 고칠 수 없어서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치려고 하질 않아서 낫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병자는 낫고자하는 확고한 의지를 7절을 통해 예수님께 밝히자 그 즉시 예수님은 그 병자를 치유하셨습니
다.
오늘 본문에 또다른 병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귀와 눈에 심각한 병이 있었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질 못하는 병이어었습니다.
본장 37절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보지도 못하고 음성을 듣지도 못하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낫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양문의 38년된 병자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들의 듣지 못하고 보질 못하는 질병 자체를 인정하려 하
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 유대인들의 병의 원인과 치료를 본문을 통해 알아 봅시다.
1) 먼저 이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37).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틀에 하나님을 끼워넣고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하는 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상상과 관념 속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처음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2)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38).
38절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성경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 생각 내 상상 내 계산이 성경말씀보다 앞서면 결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받아들여야 믿어집니다.
3) 예수님께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40).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면서도 정작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42).
43절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
면 영접하리라"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의탁하고 의지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실망하
였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상상속에 그려놓은 전지전능한 모습만을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
하고 희생적인 독생자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5) 사람의 영광을 취하려고 했습니다(44).
44절에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당연히 독생자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십자가의 영광, 고난의 영광, 낮아짐의 영광 보다 군림하고 떠받들여지기 원하는 사람들
의 영광을 취하려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위 5 가지의 원인을 놓고 볼 때, 이 유대인들은 분명히 병에 걸린 것입니다. 걸려도 단단히 걸렸습니다.
병에 걸렸으니 당연히 그에 따른 증상이 나타나겠지요.
병에 걸린 이들은 본장 16절로 18절에서 참으로 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38년된 병자가 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건에는 전혀 일말의 관심도 없이 이 병자가 안식일에 나음을 얻고 그
돗자리를 들고 간 것만 문제삼는 병적인 강박증세를 보입니다.
더나아가 예수님을 안식일날 38년된 병자를 치료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집단 착란 증
세를 보입니다.
그들 중에 만약 38년은 고사하고 38일만이라도 아프다가 마침 안식일에 치료법을 가진 사람이 지나간다면
괜챦다고 됐다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어떻게 인간들이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간미와 판단력마저 철저히 소멸되어 버릴 수 있을까요?
바로 이들은 영의 귀와 눈이 닫힌 감각불능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예수님도 믿을 수 없
으며, 본문에서처럼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환자들끼리 서로 뭉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합세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너는
정상적이라고 진단해주며 서로가 서로를 너는 옳다고 속이며 위장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
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 병이 만성이 되다보면 진리와 거짓의 경계가 사라지며 감각이 더욱 마비되고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고쳐주소서" 라고 대답하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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