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단 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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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단 한사람
2012년 8월 5일 김정범 목사
요한복음 1장 35절-51절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제자인 안드레와 요한이 세례 요한을 따르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사도 요한이 이 사건을 나름 자세히 기록한데는 당시 만연하였던 베드로 숭배를 뿌리부터 자르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오해하여 베드로를 숭배하는 이단들이 있었는데 이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그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그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참신앙고백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사도 요한은 이러한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 그룹이 형성되는 초창기의 사연을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 그룹의 창단멤버가 아닐까하는 많은 사람들의 추측으로부터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제자로 가장 먼저 따라다니게 된 장본인들은 바로 안드레와 요한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2절에 시몬 베드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초대교회 당시 왜곡된 추측들과 전설들을 사도 요한의 직접 눈으로 본 증인의 기록을 통해 바로잡는 역할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중심인물은 나다니엘이 등장합니다.
48절에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너를 보았다는 말씀 한마디에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에서 뭘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나다니엘의 즉각적인 고백이 나왔을까 고민하고 연구하였습니다.
성경 본문은 나다니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서 무엇을 하였는가에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51 절에서 예수님은 야곱이 벧엘광야에서 봤던 환상을 그대로 인용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세기 28장에서 환상을 본 야곱의 상황을 돌이켜봅시다.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탈취한 야곱은 에서의 위협을 피해 한번도 떠나보지 않았던 고향을 떠나 홀홀단신 광야로 나왔습니다.
자신을 규정하였던 환경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족장 이삭의 둘째 아들로서 항상 떠받들여지고, 보호받고 주목받던 신분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광야에서 육식동물의 울음소리에 놀라고 사막의 극심한 밤기온의 차가움에 서러웠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낮아지고 처절해지고 비참해진 상태였습니다.
그까짓 장자권이 무엇이길래, 그 장자권만 얻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막다른 길, 너무나 낯선 길, 위험한 길에서 그 때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이 장자권을 소중히 여기고 갈구하였던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야곱의 눈을 열어 하늘에 닿은 사다리와 그 위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야곱의 생각과 인생관이 달라지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즉 하나님과 연합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나다니엘도 어쩌면 평탄하고 아무일도 없었던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막막하고 두렵고 괴로운 상황, 홀로 남겨진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야곱이 돌베게를 베고 자듯,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앞으로 닦치게 될 두렵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낮고 힘들때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꿈으로 나타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나다니엘에게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고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됩니다.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던 것은 나다니엘의 이스라엘 국적을 의미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된 야곱과 같다는 의미를 표현하신 것입니다.
야곱처럼 막막한 인생의 거대한 장애물 앞에서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모습입니다.
야곱처럼 장자권이 없더라도 둘재 아들로서 편안하고 풍족한 이 땅이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장자권을 귀히 여겨 하나님의 하늘의 축복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나다니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돌베게를 자던 그 땅을 벧엘이라고 고쳐 부르시고 야곱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나다니엘과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 자신이 바로 벧엘,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나의 모든 절박함을 아시는 예수님, 그 주님이 야곱과 나다니엘에게 찾아오셨듯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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