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아비멜렉(사사기9:1-57절) 봉독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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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바알브릿(언약 주란 뜻)을 신(神)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베푼 모든 은혜를 저 버리고 그의 집도 후대(厚待)치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였는데 이번에는 외적(外敵)의 침입이 아니라 동족상잔과 내란으로 얼룩진 비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아비멜렉의 반란(삿9:1-6)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 세겜 여인에게서 난 반(半)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세겜은 에브라임지파의 중요한 성읍이며 여호수아가 마지막 총회를 개최했던 장소입니다. 아비멜렉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훔친 은으로 교활하게 방탕하고 경박한 세겜 사람들을 매수하여 그의 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잔인하게 죽였는데 막내 요담만 숨어 도망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교훈을 생각할 수 있는데 ①우상에게 바친 물질은 오히려 자신들을 파괴하는데 소용되는 것이며 ②권력에 눈이 어두우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잔인해진다는 것입니다. ③세겜 사람들은 자기 지방 출신이 왕이 된다는 지역 관념 때문에 아비멜렉을 쫓았는데(3절) 그때도 지역감정이 교묘하게 정치에 이용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④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도 기드온의 아들들을 돕지 않았는데 그것은 종교적 부패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마비시켜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35)
2. 요담의 비유(9:7-21절)
어느 누구도 세겜 사람들의 사악한 공모를 규탄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깨우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분노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절)고 했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요담은 축복의 산 그리심 산(세겜을 마주보고 있었음)에 올라가 비유로 세겜 사람들에게 신실한 책망과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경고를 했습니다. 그의 비유는 매우 창의적이었으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뽑는데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어 주기를 요청했으나 모두 지배보다 섬기기를 원했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더 즐거워하여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헛된 영광을 뽐내며 우쭐되었는데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피차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15절)
※이 비유 속에는
①하나님께서 심은 나무에게 무슨 왕이 필요하겠는가?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왕인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②가시나무를 제외한 세 나무는 모두 열매를 맺는 나무로 백성들의 공익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영예와 존경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③그 나무들은 하나님의 제단과 인간의 식탁에 유용하게 쓰여지기를 원했습니다. 영화와 권위를 탐하여 본연의 사명인 기름과 열매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가시나무로 비유된 아비멜렉은 자신의 어머니와 세겜 사람들의 충동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앞세워 자기의 야망을 채우려 한다거나 또는 잘못된 충동에 함부로 말려들어서도 안 됩니다.
가시나무는 남을 할퀴고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결국 불에 던지우게 됩니다. 가끔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전10:6), “악인이 횡행하더라도”(시12:8) 우리는 그럴수록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감히 가시나무가 한 말을 생각 해 보세요. “너희들은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15절) 얼마나 웃기는 허풍입니까? 여러분! 가시가 그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히려 가까이 가면 찔리게 될 것입니다. 협박에 못 이겨 가시그늘로 가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 요담의 위대한 점은 그의 아버지의 업적을 상기시키며(17절) 백성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촉구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옳고 그름은 결과로 증명 될 것을 공지시켰습니다.(19-20절) 이처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는 브엘세바로 몸을 피한 것을 볼 때 그는 의협심과 믿음의 지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겜 사람 가알의 발란(9:22-49절)
사악한 승리는 길지 못하는 것입니다.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사16:14절) 고 했습니다. 아비멜렉도 3년이 채 못가 하나님이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2절) 아비멜렉을 돕던 세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죄악이 행해졌을 때 주범은 물론 종범자들까지 벌을 받게 됩니다. 사악한 일을 공모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대적하여 파멸하게 됩니다. 피 흘려 얻은 것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반역한 세겜 사람들의 우두머리는 가알이었습니다.(26절) 가알도 역시 그의 아버지 편의 종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시나무를 가시나무로 하여금 치게 한 것입니다.
헛된 야망을 가진 가알은 권력을 경멸하며 권위를 모독했습니다. 36절을 보면 스볼은 가알과 같은 파벌이었으나 그가 변심하여 아비멜렉에게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반자들은 가끔 그들 무리 가운데서 또 배반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우상을 버리는 회개보다는 자기의 군사력으로 반란을 제압하려고 했습니다. 그 작전은 잘 진행되었고 승리할 것 같았습니다.(45절) 아비멜렉에게 쫓기던 사람들은 우상의 신당인 세겜 망대에 들어가 그들의 신이 지켜 줄 것을 믿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아비멜렉은 망대에 불을 질러 연기로 질식시켜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때 불타 죽은 자가 약 1,00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폭동의 결과는 범죄한 자들만이 아니고 무죄한 사람들까지 같은 재앙을 당하게 했습니다. 한편 아비멜렉은 이렇게 자기 힘으로 승리한 것을 통쾌하게 여기며 불타는 망대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우상의 망대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4. 아비멜렉의 죽음(9:50-57)
아비멜렉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데베스에 가서 그곳마저 쓸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가 또 망대를 불사르려고 접근할 때였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위에 내려 던져 두 개골이 깨지자 아비멜렉은 무기를 든 청년을 불러 자기를 찌르라고 했으니 여자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개구리도 죽으면서 “꽥” 소리를 낸다고 했듯이 죽으면서도 왕 체통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정확합니까?
①아비멜렉은 반석위에서 형제들을 죽인 것처럼 자신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②두개골이 깨져 죽은 것은 왕관을 쓰고자 탐냈던 머리위에 보복이 내려진 것입니다.
③돌이 떨어질 때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임이 분명합니다.
죽으면서 까지도 왕의 체면을 지키려고 했던 일은 참으로 우리에게 웃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다고 그 수치가 감추어지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아담과 하와처럼 무화과 잎으로 수치를 가리려 하지 말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악함은 잠시 번성할 뿐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1. 아비멜렉의 반란(삿9:1-6)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 세겜 여인에게서 난 반(半)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세겜은 에브라임지파의 중요한 성읍이며 여호수아가 마지막 총회를 개최했던 장소입니다. 아비멜렉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훔친 은으로 교활하게 방탕하고 경박한 세겜 사람들을 매수하여 그의 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잔인하게 죽였는데 막내 요담만 숨어 도망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교훈을 생각할 수 있는데 ①우상에게 바친 물질은 오히려 자신들을 파괴하는데 소용되는 것이며 ②권력에 눈이 어두우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잔인해진다는 것입니다. ③세겜 사람들은 자기 지방 출신이 왕이 된다는 지역 관념 때문에 아비멜렉을 쫓았는데(3절) 그때도 지역감정이 교묘하게 정치에 이용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④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도 기드온의 아들들을 돕지 않았는데 그것은 종교적 부패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마비시켜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35)
2. 요담의 비유(9:7-21절)
어느 누구도 세겜 사람들의 사악한 공모를 규탄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깨우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분노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절)고 했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요담은 축복의 산 그리심 산(세겜을 마주보고 있었음)에 올라가 비유로 세겜 사람들에게 신실한 책망과 치명적인 결과에 대한 경고를 했습니다. 그의 비유는 매우 창의적이었으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뽑는데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어 주기를 요청했으나 모두 지배보다 섬기기를 원했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더 즐거워하여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헛된 영광을 뽐내며 우쭐되었는데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피차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15절)
※이 비유 속에는
①하나님께서 심은 나무에게 무슨 왕이 필요하겠는가?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왕인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②가시나무를 제외한 세 나무는 모두 열매를 맺는 나무로 백성들의 공익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영예와 존경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③그 나무들은 하나님의 제단과 인간의 식탁에 유용하게 쓰여지기를 원했습니다. 영화와 권위를 탐하여 본연의 사명인 기름과 열매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가시나무로 비유된 아비멜렉은 자신의 어머니와 세겜 사람들의 충동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앞세워 자기의 야망을 채우려 한다거나 또는 잘못된 충동에 함부로 말려들어서도 안 됩니다.
가시나무는 남을 할퀴고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결국 불에 던지우게 됩니다. 가끔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전10:6), “악인이 횡행하더라도”(시12:8) 우리는 그럴수록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감히 가시나무가 한 말을 생각 해 보세요. “너희들은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15절) 얼마나 웃기는 허풍입니까? 여러분! 가시가 그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히려 가까이 가면 찔리게 될 것입니다. 협박에 못 이겨 가시그늘로 가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 요담의 위대한 점은 그의 아버지의 업적을 상기시키며(17절) 백성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촉구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옳고 그름은 결과로 증명 될 것을 공지시켰습니다.(19-20절) 이처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는 브엘세바로 몸을 피한 것을 볼 때 그는 의협심과 믿음의 지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겜 사람 가알의 발란(9:22-49절)
사악한 승리는 길지 못하는 것입니다.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사16:14절) 고 했습니다. 아비멜렉도 3년이 채 못가 하나님이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2절) 아비멜렉을 돕던 세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죄악이 행해졌을 때 주범은 물론 종범자들까지 벌을 받게 됩니다. 사악한 일을 공모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대적하여 파멸하게 됩니다. 피 흘려 얻은 것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반역한 세겜 사람들의 우두머리는 가알이었습니다.(26절) 가알도 역시 그의 아버지 편의 종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시나무를 가시나무로 하여금 치게 한 것입니다.
헛된 야망을 가진 가알은 권력을 경멸하며 권위를 모독했습니다. 36절을 보면 스볼은 가알과 같은 파벌이었으나 그가 변심하여 아비멜렉에게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반자들은 가끔 그들 무리 가운데서 또 배반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우상을 버리는 회개보다는 자기의 군사력으로 반란을 제압하려고 했습니다. 그 작전은 잘 진행되었고 승리할 것 같았습니다.(45절) 아비멜렉에게 쫓기던 사람들은 우상의 신당인 세겜 망대에 들어가 그들의 신이 지켜 줄 것을 믿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 때 아비멜렉은 망대에 불을 질러 연기로 질식시켜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때 불타 죽은 자가 약 1,00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폭동의 결과는 범죄한 자들만이 아니고 무죄한 사람들까지 같은 재앙을 당하게 했습니다. 한편 아비멜렉은 이렇게 자기 힘으로 승리한 것을 통쾌하게 여기며 불타는 망대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우상의 망대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4. 아비멜렉의 죽음(9:50-57)
아비멜렉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데베스에 가서 그곳마저 쓸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가 또 망대를 불사르려고 접근할 때였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위에 내려 던져 두 개골이 깨지자 아비멜렉은 무기를 든 청년을 불러 자기를 찌르라고 했으니 여자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개구리도 죽으면서 “꽥” 소리를 낸다고 했듯이 죽으면서도 왕 체통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정확합니까?
①아비멜렉은 반석위에서 형제들을 죽인 것처럼 자신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②두개골이 깨져 죽은 것은 왕관을 쓰고자 탐냈던 머리위에 보복이 내려진 것입니다.
③돌이 떨어질 때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임이 분명합니다.
죽으면서 까지도 왕의 체면을 지키려고 했던 일은 참으로 우리에게 웃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다고 그 수치가 감추어지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아담과 하와처럼 무화과 잎으로 수치를 가리려 하지 말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악함은 잠시 번성할 뿐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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