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전략 (룻3:1-18절) B. C 11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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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장래에 대한 나오미의 염려는 단지 젊은 과부이기 때문에 재혼 시켜야 되겠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율법에 입각한 혈통 승계 및 재산 회복의 권리 행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보아스와의 혈연관계를 가르치면서 그에 대한 권리를 이행하도록 며느리를 독려했습니다.
1. 시모의 명에 순종한 룻(1-6절)
룻에 대한 보아스의 친절을 통하여 나오미는 시모로서 착한 며느리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와 가문의 회복에 대한 책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떤 일을 해 주어야 할 것인가를 느끼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랬듯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해 주도록 하여야 합니다.(1절) 여자는 남편의 집에서 편안함을 얻어야 하듯이(9절) 우리의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만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1) 자식을 둔 부모는 잘 살펴서 “그들이 복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에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바로 우리를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사람은 전도의 열정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곡식을 지키며 잘 것을 예측하고 룻이 그에게 접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0 여 년 동안 모압에 가 있었던 나오미는 보아스가 제일 가까운 기업을 무를 자인 것을 잘못 알고 몸을 청결하고 단정히 하게 한 후 보아스가 누운 발치 이불을 들고 누울 것을 룻에게 주문했습니다. (당시 동방에서는 신부가 신랑에 대한 복종을 맹세하는 표로 신랑이 누운 자리 발쪽의 이불을 들치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고 함) 우리들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갈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입니다. 우의 근족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으니 그는 우리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깨끗이 하여 그의 발치에 접근해야 합니다. 복종을 맹세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의 지시가 옳지 않았다면 룻은 결코 순종하지 않았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말씀대로 다 행하겠다고 했습니다.(5절) 지금까지의 룻의 행실을 볼 때 그녀는 성경에서 경계한 우상을 섬기던 그러한 모압 여인이 아니었습니다.(민25:1절 참조) 룻은 이스라엘의 보아스의 신부가 될 충분히 내면적인 자격 요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8:9절)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로움을 얻은 자들입니다.(롬3:24절)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교훈은 어른들의 권고가 엄숙하고 신중한 것으로 올바른 일을 위한 것이라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이 자기에게 굴러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이생의 복 뿐 아니라 영생까지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룻이 신부인 나와 교회요, 보아스가 신랑을 상징한다면 성령님은 항상 룻을 아끼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보아스와 룻(3:6-17절)
(1)보아스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타작마당에서 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었으며 수확의 기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주님도 알곡신자들을 보시며 그렇게 기뻐하며 항상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일꾼들과 먹고 마시며 그들을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부유할수록 그의 일꾼과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의 노고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7절의 내용을 깊이 음미해 보면 보아스는 신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같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수확의 기쁨에 빠져 환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보아스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폭음 폭주로 이성을 잃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8절) 보아스는 부자였으면서도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소탈하고 검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노적거리 곁에 누워 잤을 것입니다. 그는 지위나 안락을 찾기보다 그의 조상 야곱처럼 소박한 사람으로 짚단에서도 만족스럽게 잘 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2)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대로 순종했습니다.
무례하다거나 뻔뻔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옳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너무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 앞에 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다는 자존심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룻은 여자의 수치심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옷을 입은 체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워서 보아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룻은 깨어난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절) 이 표현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에게 하여야 할 간청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으셨으므로 (마23:37절) 그의 날개 밑에 와서 이와 같은 간청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도 인정받아야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 받았다고 했습니다.(눅2:52절)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악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읍에 퍼진 룻에 대한 좋은 소문 때문이기도 했습니다.(11절) 그래서 경솔한 여자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미덕은 거기에 합당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빌4:8절) 보아스는 욕정적으로 대하지도 않았고 인자함으로 안심시켰습니다.(11절 상) 그리고 덕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일찍 돌아가게 했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14절) 윗사람으로서 순결을 더럽히지 않은 그의 성품이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 선한 양심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아야 합니다. 오해받기 쉬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그것은 시모인 나오미에게도 거절의 의사가 없음을 알려 위로하기 위함과 배려도 스며 있었을 것입니다.
(3) 나오미의 신앙(18절)
룻으로부터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오미는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오미의 여호와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걸음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고(렘10:23절)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섭리하신다는 사실(잠16:9절)을 불과 10여년(룻1:4절)의 짧은 역사 가운데서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생활을 통해 귀한 신앙의 원리를 터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매사에 너무 서두르거나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시리라”(시37:4,5, 시138:8절)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30:15절에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나오미처럼 생활을 통하여 귀한 신앙의 원리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보아스와의 혈연관계를 가르치면서 그에 대한 권리를 이행하도록 며느리를 독려했습니다.
1. 시모의 명에 순종한 룻(1-6절)
룻에 대한 보아스의 친절을 통하여 나오미는 시모로서 착한 며느리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와 가문의 회복에 대한 책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떤 일을 해 주어야 할 것인가를 느끼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랬듯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해 주도록 하여야 합니다.(1절) 여자는 남편의 집에서 편안함을 얻어야 하듯이(9절) 우리의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만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1) 자식을 둔 부모는 잘 살펴서 “그들이 복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에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바로 우리를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사람은 전도의 열정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곡식을 지키며 잘 것을 예측하고 룻이 그에게 접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0 여 년 동안 모압에 가 있었던 나오미는 보아스가 제일 가까운 기업을 무를 자인 것을 잘못 알고 몸을 청결하고 단정히 하게 한 후 보아스가 누운 발치 이불을 들고 누울 것을 룻에게 주문했습니다. (당시 동방에서는 신부가 신랑에 대한 복종을 맹세하는 표로 신랑이 누운 자리 발쪽의 이불을 들치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고 함) 우리들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갈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입니다. 우의 근족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으니 그는 우리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깨끗이 하여 그의 발치에 접근해야 합니다. 복종을 맹세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의 지시가 옳지 않았다면 룻은 결코 순종하지 않았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말씀대로 다 행하겠다고 했습니다.(5절) 지금까지의 룻의 행실을 볼 때 그녀는 성경에서 경계한 우상을 섬기던 그러한 모압 여인이 아니었습니다.(민25:1절 참조) 룻은 이스라엘의 보아스의 신부가 될 충분히 내면적인 자격 요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8:9절)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로움을 얻은 자들입니다.(롬3:24절)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교훈은 어른들의 권고가 엄숙하고 신중한 것으로 올바른 일을 위한 것이라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이 자기에게 굴러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이생의 복 뿐 아니라 영생까지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룻이 신부인 나와 교회요, 보아스가 신랑을 상징한다면 성령님은 항상 룻을 아끼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보아스와 룻(3:6-17절)
(1)보아스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타작마당에서 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었으며 수확의 기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주님도 알곡신자들을 보시며 그렇게 기뻐하며 항상 우리 곁에 계실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일꾼들과 먹고 마시며 그들을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부유할수록 그의 일꾼과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의 노고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7절의 내용을 깊이 음미해 보면 보아스는 신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같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수확의 기쁨에 빠져 환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보아스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폭음 폭주로 이성을 잃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8절) 보아스는 부자였으면서도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 소탈하고 검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노적거리 곁에 누워 잤을 것입니다. 그는 지위나 안락을 찾기보다 그의 조상 야곱처럼 소박한 사람으로 짚단에서도 만족스럽게 잘 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2)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대로 순종했습니다.
무례하다거나 뻔뻔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옳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너무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 앞에 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다는 자존심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룻은 여자의 수치심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옷을 입은 체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워서 보아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룻은 깨어난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절) 이 표현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에게 하여야 할 간청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으셨으므로 (마23:37절) 그의 날개 밑에 와서 이와 같은 간청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도 인정받아야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 받았다고 했습니다.(눅2:52절) 보아스는 룻의 행실을 악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읍에 퍼진 룻에 대한 좋은 소문 때문이기도 했습니다.(11절) 그래서 경솔한 여자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미덕은 거기에 합당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빌4:8절) 보아스는 욕정적으로 대하지도 않았고 인자함으로 안심시켰습니다.(11절 상) 그리고 덕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일찍 돌아가게 했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14절) 윗사람으로서 순결을 더럽히지 않은 그의 성품이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 선한 양심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아야 합니다. 오해받기 쉬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그것은 시모인 나오미에게도 거절의 의사가 없음을 알려 위로하기 위함과 배려도 스며 있었을 것입니다.
(3) 나오미의 신앙(18절)
룻으로부터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오미는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오미의 여호와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걸음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고(렘10:23절)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섭리하신다는 사실(잠16:9절)을 불과 10여년(룻1:4절)의 짧은 역사 가운데서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생활을 통해 귀한 신앙의 원리를 터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매사에 너무 서두르거나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시리라”(시37:4,5, 시138:8절)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30:15절에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나오미처럼 생활을 통하여 귀한 신앙의 원리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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