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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강해론(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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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805회 작성일 10-04-2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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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32장-36장)


이 장들에서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벧엘로 가는 도중에 생긴 생의 중대한 경험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육과 영, 옛 생활과 새 생활 사이의 대결을 예증해 주는 세 가지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1. 천사들을 만남(1-23절)

야곱에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만났던 천사들을 만났고 천사들(하나님의 군대)의 임재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시켜 주는 표시였다.(28:15, 31:3절 참조) 천사들을 본 사람은 혼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에서와 자신과의 관계가 떠올랐습니다. 20년의 지난 역사도 기억을 지울 수 없었으니 천사들을 만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으면서도 야곱은 아직도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할 때 히브리서 1:14절과 시편 91편 11-13절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때까지도 자신과 꾀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선물로 에서의 노기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렵고 답답하여 식솔을 두 떼로 나누고(7절) 1, 2진을 보내어 물질로 설득하려 했습니다. 야곱은 아직도 육에 속해 있었으니 천사들의 보호도 무시했고, 하나님께서 라반으로부터 그를 보호했던 체험도 잊고 말았습니다. (31:24)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2. 천사와 씨름한 야곱(24-32절)

야곱은 두 아내와 가솔들에게 먼저 얍복을 건너게 했습니다. 또 모두 소유물까지 건너게 했고 그 밤에 홀로 남았습니다.(24절)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을 넘어뜨리려고 했을 때 야곱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환도뼈까지 위골되었습니다. 야곱은 저녁 내내 씨름하다가 날이 새려할 때 어렴풋이 씨름한 대상이 자신보다 강한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연약하게 하셨고 야곱은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먼저 주님을 보기까지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름을 물었습니다.(27절) 하나님은 몰라서 물어 본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이 “속이는 자” “넘어뜨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야곱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변화된 사람이 됩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셨으니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겨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으로 이제부터 육신으로 행하지 않고 성경으로 행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절은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것을 증명 하는 것으로 연약함이 아니라 능력의 표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하심 히11:34) 31절은 새날이 밝아옴을 말합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 이란 뜻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화해(33장)


야곱이 그의 새 이름을 따라,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새로운 지위에서 살아왔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장은 새 이름 “이스라엘” 이 아니라 옛 이름 “야곱”이란 말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믿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에서의 400명 군대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기까지 했던 사람이 세상의 사람 앞에 아첨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봅니다.

그가 진정 에서와 화합한 것이 아니라 아첨이었던 점은 16-17절의 내용에서 밝혀집니다. 에서를 따라 세일로 가겠다던 야곱은 숙곳에 머물고 맙니다.(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절룩거리는 것이 자기의 꾀를 신뢰하는 절보다 낫습니다. 10절에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으오며...” 이 말을 에서를 피하려 했던 야곱으로서 거짓된 아첨의 인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면 불안 가운데서 에서가 의외로 환대 해 주는 것을 보고(4절) 기뻐서 약복강변에서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생각하고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대적자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게도 하십니다.

(2) 숙곳에 머문 야곱(16-20)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했던대로 서둘러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았어야 합니다.(28:22) 그런 기름진 숙곳에 머물며 세겜의 아비 하몰에게 땅을 사고 정착하고 말았습니다.(19절) 

그는 롯과 다를바 없이(창13:2) 세겜 근처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성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히11:13-16)


야곱의 딸 디나 사건(34장)

하나님에게 서원했던 것을 망각한 재 숙곳에 머문 것이 큰 화근이었습니다. 롯처럼 육의 것을 더 사모하여 유혹의 장소에 가족을 방치 해 두었습니다. 레아의 소생인 딸 디나가 세겜 성에 구경 갔다가 그 땅 추장 세겜이 강간을 하고 디나를 연련(戀戀)하게 되었습니다.(3절) 그래서 그 아비 하몰에게 다니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혼자서 하몰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청혼까지 했습니다.(8절)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그 아버지처럼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그들은 신성한 할례의식을 이용하여 속임수를 씁니다. (14-17절)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하여 그 제의를 수용하였고 세겜은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 한 민족되 기를 원했습니다.(22절) 할례를 받고 삼일 째 되어 고통당할 때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부지중 엄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는 모욕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더 놀랄 일은 야곱이 그들의 죄에 대한 응징보다 자신의 완전만을 더 걱정한 것을 볼 때 한심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세운 표준에 따라 살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오늘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속이고 죄를 짓고 실패합니까?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 백성의 지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엡4:1절 이하)





벧엘로 올라간 야곱(창35:1-29절)


야곱에게 벧엘은 뜻깊은 장소였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하란)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시어 야곱을 안심시키고 보호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장소다(28:10절이하)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야곱은 그곳에 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 위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서약하였다. 그 약속의 이행을 위해 야곱은 이제 벧엘로 올라왔다. 이것은 디나 사건이 하나의 큰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디나 사건때 야곱은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러한 야곱의 결단을 귀하게 보셨다.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의 일행을 두려워하도록 하신 것도 결국 그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이셨던 것이다.(35절)


1. 주목할 점

1절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곧 꿈을 꾸고 서약했던 장소를 기억하게 하셨다. 야곱처럼 타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헌신의 장소로 돌아가 서약을 새롭게 하는 일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식솔을 제단으로 인도하기에 앞서 야곱은 “집을 청결케” 해야 했다. 이방인의 종교 의식과 연관된 이상한 신들과 보석을 땅에 묻어버렸다. 죄가 처할 곳은 무덤뿐이다. 이 장에는 사실상 네 개의 무덤, 즉 우상의 무덤(4절), 드보라의 무덤(8절), 라헬의 무덤(19절), 이삭의 무덤(29절)이 나온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쌓았다(14절).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를 만나셨고, 새 이룸 이스라엘을 상기시켰다. 야곱이 전에 잃었던 모든 것은 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제 다시 얻게 되었다. 타락한  신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새 경험이 필요하다. 옛 경험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차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한 직후에 라헬은 죽은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베냐민을 해산할 때 난산으로 죽었다.(16-18절) 위대한 영적 체험은 슬픔을 더욱 잘 극복할 수 있다. 22절에 보면 헌신적인 신자의 가족에게도 슬픔뿐만 아니라 죄도 있는 것이다. 르우벤은 큰 기대속에서 태어났다.(29:32) 말년에 야곱은 르우벤이 많은 것을 잃을 것을 예언했다.(49:3절이하) 루으벤에게는 참을성이 없었고 경건한 신앙이 결여되어 있었다. (49:4) 르우벤은 시모 빌하와 통간했고 그 결과 장자권(대상5:1-2)을 잃었다. 죄는 결코 축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야곱의 열두 아들

 
                           라헬- 르우벤, 시몬, 유다, 레위, 잇사갈, 스불론

                       종 빌하- 단과 납달리

                  라헬- 요셉, 베냐민    종 실바- 갓, 아셀 

28절에 보면 헤브론에서 이삭이 180세에 기운이 진하여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했다.


에서의 계보(36장: 1-43절)


에서(에돔)의 계보에 앞서 돌아 볼 내용들이 있다 .창세기 기자는 벧엘 에서의 야곱의 약속 이해(35:14-15)과 베냐민의 탄생으로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성립(35:23-26절) 이삭의 죽음(35:2829절) 을 기록함으로서 새로운 국면에서 이삭 다음 대를 이어갈 야곱의 약전(37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에서 모세는 자신의 기록 방식대로 명실 공히 이삭 이후의 하나님의 구원(복)의 기관으로 야곱을 자신의 기록 핵심부에 두기 위하여 먼저 에서의 계보를 본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모세의 기록은 연대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기록 목적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면이 강하다. 이러한 예는 이삭의 죽음이 연대적으로 창37장 이후에 위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 언급 되는데 서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시점에서 야곱이 족장의 지위를 계승하고 이삭은 뒷전으로 물러났음을 암시하기 위함인 듯하다.  36:608절을 보면 에서는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 올 당시에 이미 세일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난다.(32:3, 33:14-16절) 세일은 터가 넓고 활쏘기가 좋아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을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서도 이곳을 그의 활동무대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상속한 재산인 소 떼나 양들은 에서의 종들이 관리하고 있었던 같다. 이제 야곱이 풍부한 재산을 가지고 이삭에게로 오자 에서는 그의 모든 재산을 가지고 세일로 떠나갔을 것이다. 이로서 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경륜(經綸):manage ment-입을 조직하고 경영함.  ruling-천하를 다스림 에서 끊어졌다.

에돔 족속의 조상(에서 대략)

에서            아내 어다-  엘리바스  데만, 오말, 스보, 가담, 그나스

                                           첩 딤나- 아말렉

                           아 내 바스맛-  르우엘-   나핫, 세라, 삼마, 미사

        

                  아내 오홀리바마      -여우스, 얄람, 고라


※참고 ①36:20-30절 :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족속을 정복했던 것처럼 에서의 자손들도 세일 산의 원주민 호리 족속을 정복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에서의 자손들이 원주민을 완전히 멸하였거나 몰아냈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도 일부 가나안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거하였기 때문이다.(삿1:21, 27-35절) 또한 에서의 계보에 호리 족속의 족보가 언급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상당수가 에서의 자손들과 혼인함으로서 한 민족으로 동화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가 히위 여인이었던 점(2절)은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② 36:31절 “이스라엘...왕이 있기 전에” 이 부분을 모세시대 이후 왕정시대에 가필 증보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모세가 미래를 예견하고 씻을 수도 있다. 35:11절에서는 왕정에 대한 계시가 주어져 있다. 혹자는 본문을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왕이 있기 전에”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③36:37절 “유브라데하숫가” 이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단순히 “2강을 뜻한다. 여기서는 에돔 동북부에 있던 강을 가르킨다.

창세기 2장 11절 이하에 나오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4강중의 하나인 유브라데 강과 동일한 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0-06-18 18:55:01 주보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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