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을 살려준 다윗(삼상24:1-22절) B. C 1015년경 > 주일오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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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살려준 다윗(삼상24:1-22절) B. C 101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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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848회 작성일 10-05-0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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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적 사건을 통해 사울의 추격에서 극적으로 벗어났습니다. (23:27-28)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또 다시 추격했습니다.


1. 사울의 겉 옷자락을 벤 다윗(1-15절)

(1)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는 굴에 숨어 있을 때 마치 사울이 그곳에 이르러 발을 가리우려 그 굴에 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 지방에는 작고 큰 굴이 많은데 목자들이 양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했다고 합니다. 굴은 대부분 깊고 너무 어두워 몇 발자국 앞도 분별할 수 없었는데 하필 사울이 그 굴에 들어와 용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기 위한 절호의 챤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심복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니 사울을 죽이자고 할 때 4절에 보면 다윗도 어느 정도 그들의 판단에 수긍했지만 곧 마음을 돌려 사울의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었으나 그것마저 마음에 찔러 가슴 아파했습니다. 복수하기에 좋은 기회에 시험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이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그렇게 해하지 못하게 했는데 사울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굴 밖으로 나갔습니다.(1-7절) 여기서 자신의 원수에 대한 관용성은 다윗의 인격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사울의 행위에 대해 재판장이신 여호와의 판결에 맡기는 위대한 신앙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다윗은 진정한 승리자였습니다. 불의에 대하여 분개하는 것도 남자다운 것이지만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더욱 경건한 일입니다.

(2) 진심을 알린 다윗(8-15)

사울의 뒤를 따라 굴에서 나간 다윗은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사울왕의 옷자락을 보이며 자기 손에 왕을 죽이려는 악의(惡意)나 죄가가 없음을 호소했습니다. 나와 왕 사이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리니 자신의 손으로는 왕을 해 하지 않겠다고 진심을 알렸습니다.(12절) “옛 속담에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자기 손은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13절)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에 비유하여 왕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못된다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이것은 장군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께서 판단하여 주실 것을 호소하여 자신이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씻어줄 것과 또 제발 더 이상 자기를 죽이려 하지 말아줄 것을 사울에게 애원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심과 핍박은 중상자들 때문에 되어 진 것입니다.(9절 참조) 선한 사람도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을 받되 그것이 중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중상은 가장 고약한 악 중의 하나입니다. 또 불신앙에서 오는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중상은 치명적인 악 영향을 가져옵니다.

교훈: 우리는 남에게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말의 은사를 유익하게 사용합시다. 듣는 자에게 덕이 되게 해야 합니다. 또 나아가서 모든 악한 말을 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판단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2. 감동된 사울(16-22절)

다윗을 죽이려는 악의(惡意)를 품고 추격하는 사울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는데 옷자락만 베고 살려 준 것을 보자 악의 대명사 같았던 사울도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강풍으로 옷을 벗기려 하지 말고 따뜻한 볕으로 벗게 해야 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진심을 알고 감동되어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16절) 여기서  사울은 다윗 앞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보다 의롭다고 했고(17절) 그가 선대(善待)하여 죽음을 면했다고 했습니다.(18절) 악한 사울의 인격으로서는 원수를 평안히 가게 한 다윗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호와께서 선을 갚아주시기를 구했습니다.(19절) 자기는 패자요 다윗이 승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과(20절) 그때에 제발 사울왕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자기 이름이 멸하지 아니할 것을 하나님으로 자기에게 맹세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 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보시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눅23:34절) 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끝으로 개심(改心)은 선한 결심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적하던 일을 중단하고 기브아의 집으로 돌아간 것(22절)은 곧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울이 눈물을 흘리면서 뉘우치기는 했지만 나중의 행위를 볼 때 진실 된 회개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감정에 기복이 심한 사람은 깨닫고 뉘우치기는 잘 해도 햇빛이 지나가면 다시 그늘이 지는 것처럼 금방 차가워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성령의 인침을 받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13:10)고 말씀 하셨는데 우리는 성령으로 깨끗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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