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의 야욕과 시므이의 저주(삼하16: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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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종교입니다.(고전1:27) 그러나 약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쫓겨갈 때 시바는 그 기회를 노려 아부함으로 주인 시므이의 재산을 가로채려 했던 것입니다. 선물은 사람의 길을 부드럽게(넓게)하나(잠18:16) 뇌물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약할 때 남을 오해하기 쉽고 판단력이 흐려져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약삭빠른 시므이는 바로 다윗의 그 점을 노린 것입니다.
2,. 므비보셋을 모함한 시바
음식물을 잔뜩 싣고와 다윗에게 호의를 베푼 시바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다윗은 분에 넘치는 선물을 가져온 시바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2절) 그때 시바는 나귀는 왕족을, 떡과 과실은 근위병들(소년들), 포도주는 피곤한 자에게 마시게 하려고 가져왔다고 하자 다윗은 시바가 현명한 사람이며 관대하여 주인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므비보셋의 소식을 묻자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시바는 사람들이 다윗의 왕위가 므비보셋에게 계승될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3절) 그러나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삼하19:24-30절 참조) 사환들의 거짓말이 주인에게 엄청난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풀었습니까?(삼하9:10절)
그런데 그 므비보셋이 자신의 약함을 틈타 압살롬과 결탁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바로 므비보셋의 사환의 입에서 나온 정보이므로 현명한 다윗도 순간 감정적인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4절)하고 므비보셋의 반역을 인정하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므비보세의 모든 재산권을 시바에게 뺏으라고 권한을 부여해 버렸습니다. 진리가 빛 앞에 들어나면(삼하19:29절참조) 후에 부끄러워 할 것인데 다윗은 경솔한 판단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시바는 그의 계략대로 새로운 신분을 얻었으므로 다윗의 고지식함을 비웃고 자기 목적 성취를 기뻐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양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두 개의 귀를 만들어 놓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시므이의 저주(5-14절)
우리는 여기서 시바의 아첨 못지 않은 시므이의 저주를 다윗이 견디어 내는 훌륭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바의 사건은 다윗이 타인을 잘못 인정했으나 시므이에 대해서는 바로 판단했었습니다.
(1) 시므이의 악담(5-8절)
시므이는 사울 집안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울이 몰락될 때 아마 모든 관직에서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뼈 맺힌 원한을 품게 되었을 것이며 다윗이 번영하고 권력이 왕성할수록 분노심이 더해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재난을 보며 적개심을 폭발시켰으니 다윗과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피를 흘린 자여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다”(8) 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가는 꼴이 되었으니 피 흘린 자로 화를 자초했다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악한 죄인을 만나면 죽을 때까지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은 내가 비참하게 되었을 때는 악이 받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 참았습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러지는 자를 아주 짓밟아 없애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피 값을 불법으로 다윗에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리석음이나 불의의 원한에 이용하려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분노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2) 흥분한 아비새(9-14절)
다윗의 심복 아비새 장군이 흥분하여 시므이의 머리를 베개 해 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합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다윗이 허락만 했다면 당장 해 치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게 하심이니”라고 흥분한 아비새를 달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성에서 치욕을 당할 때 하늘로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자고 할 때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눅9:55절) 어째서 다윗은 그처럼 흥분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것입니까?
(1) 그는 여호와께서 적절한 때에 그에게 보복하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삼하12:11-12절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비난의 소리도 좋은 충고로 믿는 것입니다.
(2) 그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10-11절을 보면 다윗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사용하신 것으로 감수했습니다. 욥이 약탈자에게 뺏긴 것이 아니라 주께서 빼앗아 갔다고 한 것처럼 같은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시므리에게서 나온 입술의 저주로 하나님의 회초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은혜스러운 사람은 고통 속에서 말이 없는 것입니다.
(3)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습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 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11절) 다윗은 분한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견길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4)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의 고통을 몰아내고 좋을 것을 허락해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때 직면한 고통자체가 통제되고 재난으로부터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12절) 다윗은 시므이를 통해 자신을 연단시킨다고 위로를 받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고통을 당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시므이는 계속 산비탈로 따라오면서 저주하며 돌을 던지고 먼지를 날렸습니다.(13절)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참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윗을 따라가던 신하들처럼 침묵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거절을 당합니다. 아비새처럼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충성에 충분히 보상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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