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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하는 다윗(삼하15:13-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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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750회 작성일 10-10-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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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人心)이 압살롬에게로 기울어졌다는 사환의 말을 듣고 다윗은 압살롬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으므로 예루살렘성에서 싸우면 많은 인명(人命)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전략상 도피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이렇게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카이젤은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너무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키우지 말라, 높은 희망은 높은 절망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마음만 믿고 압살롬과 대화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하나님을 의존하여야겠지만 그러나 자녀들과의 교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압살롬의 반심(叛心)은 대화의 부재에 원인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1. 다윗의 조처(13-23절)

 압살롬이 반심(叛心)을 품은 것을 안 다윗은 왜 방어하려 하지 않고 피했습니까?  왜 용사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해결방법을 취한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채찍이심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순간 다윗은 우리아의 사건을 회상하며 그 죄악 때문에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삼하12:11)라는 말씀대로 올 것이 왔음을 깨닫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죄악에 대한 형벌을 달게 받으려는 복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싸워서 재화를 조절하거나 대적할 사항이 아님을 느꼈던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싸워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당하지 않게 하려는 지도자로서의 배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2) 다윗과 함께 한 자들

압살롬은 말과 병거를 타고 올 때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을 붙들기 위하여 추종자들에게 함께 살고 함께 죽자는 뜻으로 도보로 피난하여 자신을 낮추었습니다.(전10:7) 또 후궁 10명만 남겨두고 권속을 데리고 갔습니다. 사람이라면 언제나 갑작스런 재난에서 가족을 돌보아야 합니다. 10명을 남겨둔 것은 강탈자들이 그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피난길에 백성들은 물론 블레셋 출신 600명이나 되었다고 한 것은 (18절) 유대교의 신봉자들로 다윗의 덕망과 경건성에 감화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블레셋인들의 지도자였던 잇대와 대화(19-22절)

다윗은 쫓기는 자기의 처지를 설명하여 이제라도 네 동포들을 이끌고 돌아가도록 잇대에게 권했습니다. 그것은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선의(善意)도 있었겠지만 반면 충성심을 시험해 보고저 하는 일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20절) 한 것은 자기의 고충보다 남의 고통을 더 생각한 다윗의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잇대는 결단코 다윗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곳으로 가던, 죽든지 살든지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는 역경 중에서도 우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충의와 사랑의 강도가 최고로 높은 것이 곧 그리스도만을 따르려는 신앙인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단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나를 살리려 하신 그 사랑에 끌려 그를 사랑하는 것이 곧 신앙인 것입니다.(요1서4:9절) 또 악한 자식을 두었기 때문에 높은 영광의 자리에서 천민으로 하락한 것을 보고 백성들이 통곡했습니다.(23절) 그들은 다윗이 이스라엘 건설을 위해 어떤 고생을 했고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았기에 도피하는 다윗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울고 말았을 것입니다.


2. 제사장 사독에게 말한 다윗의 요구(24-29절)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었으므로 언약궤의 향방에 민심이 쏠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있기를 원했으니 그러면서 그는 환도(還都)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다윗은 언약궤의 안전을 갈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천막으로 끌고 다니며 어지럽히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독에게 성으로 매어 갈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안전이나 번영보다 교회의 안전과 번영을 더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법궤가 성전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환궁하여 왕위에 복직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을 더 만족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서 자신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합니다. 히스기야 왕도 자신의 건강과 회복을 바라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사38:22절참조)

(3) 다윗은 자신의 당면한 불행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으로 알고 매우 겸손했습니다.

다윗은 26절에서 징계 받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판단대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압살롬과는 전혀 달리 야심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였습니다. 다윗은 일생을 대체로 이런 심정으로 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사독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냄(27-29절)

다윗은 하나님의 일시적인 징계가 끝나면 왕위에 다시 복귀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사독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내 그곳의 36세를 알려주도록 당부하였습니다.


3. 기드온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올라간 다윗(30-37절)

(1) 다윗은 그때 머리에 수건을 쓰고 수줍은 얼굴로 슬피 울며 맨발로 죄수처럼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한 괴로움이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줍니다.

그때의 다윗의 심정이 예레미야 애가 3:19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그의 죄가 항상 그 앞에 있었지만(시51:3) 지금처럼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독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그때의 마음 상처가 얼마나 무거운 고통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시38:4) 다윗이 울 때 그의 고통과 슬픔에 감동되어 따르는 모든 백성도 함께 울었습니다.(30절)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사랑의 공명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죄인들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함께 우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울때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함께 했었습니다.(대하32:26절 참조)

(2)후새의 도움(31-37절)

다윗 왕에게 충격적인 것은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모반에 합류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다윗임금의 모사였습니다.(삼하15:12절) 그 정보는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다윗은 아히도벨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에게 그의 모사를 어리석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31절)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었습니다.(32절) 그렇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원수들의 모략을 파괴하는 좋은 무기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왔습니다. 다윗은 후새가 군인으로 다윗을 돕는 것보다는 궁에 들어가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도록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협조하도록 투입시켰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친구로서 다윗에게 충성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실패케 하는데 주역을 맡아 소임을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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