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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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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612회 작성일 23-05-0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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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5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1. 법궤 운반 1차 시도

블레셋을 격퇴하고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변방에 있는 법궤를 이스라엘의 새 중심 예루살렘으로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우리는 1차 시도의 실패 요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법궤를 만지다 죽은 웃사는 억울할 만도 합니다.

소들이 뛰는 통에 법궤가 떨어지게 생겼으니 당연히 잡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웃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 죽임을 당한 웃사와 아효는 아버지 아비나답의 집에 14년 이상 보관되었던 법궤에 대해 별다른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온 법궤가 처음에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일지라도 시간이 오래되면 그 두려움과 경외심이 무디어지기 마련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아버지 아비나답이 법궤를 관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거의 방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14년이 흐르고 웃사와 아효에게 법궤는 이제 별다른 느낌이 없는 수하물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특별할 것 없는 수하물이라고 생각했던 법궤를 만지는 순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웃사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와 사연으로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1차 시도에서 다윗은 법궤를 정권강화와 국정동력에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을 중심으로 통일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격퇴함으로 사기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새 수도 예루살렘에 국가의 에너지를 집약시켜야 하는데 법궤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가집니다.

법궤 운반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닌 국가적 이벤트로서 최대한의 흥행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법궤는 가로 114cm, 세로 68.4cm, 높이 68.4cm의 직사각형 나무 상자일 뿐인데 삼 만명의 인원이 동원되었습니다.

인력 뿐만 아니라 당시 최신 기술이 집약된 새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법궤를 운반하던 웃사가 즉사하니 무리의 함성이 일시에 고요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은 무조건 다윗 편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정점의 순간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죽을 고비들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심으로 헤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내 편이실 것이라 믿었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돌변하셔서 진노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믿을 구석은 하나님 한 분 뿐이었던 다윗에게 가장 큰 충격과 공포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찾아온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법궤 안에 가두려한 죄

법궤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하나님의 상징과도 같았던 성물 중의 성물입니다.

법궤를 앞세우면 어떤 전쟁도 승리했으며 요단강물도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법궤로 인해 사무엘상 6장에서 법궤를 함부로 들여다본 벧세메스 유대인 70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오늘날 웃사까지 죽었습니다.

승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가 만졌다가 죽기까지 하는 법궤의 정체를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히브리어 원어로는 그룹들 사이가 아닌 위에 좌정하신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법궤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법궤 위에 임하신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법궤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의미를 볼 때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법궤 위에 있는 하나님을 이름에 집중하지 않고 법궤가 가져다 주는 승리와 신통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바로 이런 잘못을 저질렀으며 법궤를 함부로 만진 웃사나 별반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입니다.

법궤 위의 하나님보다 내게 승리를 주는 법궤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의 상징인 법궤만 있으면 다 될줄 알았은데 오히려 법궤가 저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법궤 안에 가두려한 죄입니다.

하나님을 법궤 안에 가두고 자신의 승리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4. 해답은 법궤 안에 있다.

조립해서 사용하는 가구나 가전이 있습니다.

굳이 설명서 없이도 대충 맞추면 될거 같습니다.

막상 해보면 뻑뻑해서 억지로 끼운 나사와 너트가 제자리가 아닌 것을 거의다 조립한 후에야 알게 되어 다시 분해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조립 가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신 분입니다.

대충 법궤에 담았다가 필요할 때 이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이제 법궤를 열고 법궤 안의 말씀이라는 설명서를 진지하게 보아야 할 때입니다.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웃사 사건을 계기로 지난 일을 돌아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법궤를 열어본 벧세메스 사건 때 죽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으며 오늘 죽은 웃사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전에 법궤를 만졌던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 때문에 전염병을 맞았지 법궤를 만져서 죽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근의 이방인 에돔사람 오벳에돔에게 법궤를 거의 강제로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 아비나답이 14년 이상 보관하는 동안 그렇게 잠잠하던 법궤가 이방인 오벳에돔에게 겨우 석달 동안 있으면서 엄청난 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삼만의 군사를 보냈던 다윗이 이번에는 직접 갔습니다.

이전에 법궤를 사람만 보내 배달 시켰던 다윗의 건방이 이젠 완전히 빠진 모습입니다.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이번에는 민수기 5장 말씀대로 성물 운반을 맡은 레위지파 고핫자손들이 직접 어깨에 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설명서대로 착실히 따르는 모습입니다.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은 왕의 의복을 벗어던지고 베 에봇, 세마포를 입었습니다.

레위기 16:4 와 출애굽기 39:28 대로 하고 있습니다.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법궤 예루살렘 이송 프로젝트는 일단락 되었습니다.

해답은 법궤 안에 있었습니다.

바로 법궤 안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내 미갈이 업신여길 정도로 기쁨에 심취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기쁨에 미쳐 날뛰어야 정상입니다.

말씀대로 믿으면 나타나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의 춤추는 다윗을 보면서 말씀이 주는 기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말씀을 보면서 가지는 가장 큰 기쁨은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쁨입니다.

내가 이렇게 망쳐놨는데도 아직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이렇게 건방을 떨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용서하시는구나 라고 깨닫는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지옥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안도와 함께 겹쳐지는 감동의 극한입니다.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돌아보니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궤를 쫓은 것 아닌가 회한하던 성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건강, 성공, 승리에 집중하여 오히려 하나님 자체를 놓쳐버린 법궤 안의 하나님만을 쫓았다고 합니다.

내가 이용할 수 있고 내게 도움이 되는 도구같은 법궤 안의 하나님은 실제 하나님이 아닌 내가 지어낸 내가 그려온 하나님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위에 있는 법궤가 교회 건물이었고, 교회 내의 여러 종교적 행위와 의식들, 수많은 예배와 봉사들, 헌금과 예물, 여러 직책과 직분들이 나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법궤라고 생각했습니다.

법궤를 모으면 모을수록 복이 더 들어 올 것 같아 더욱 열심을 내지만 이렇게 한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안해도 잘만 사는 세상 사람들보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 불안합니다.

이제서야 말씀을 통해 진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는 내가 생각했던 중요한 일들이 별거 아니였고 내가 소홀히 했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지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나니 전에는 없어서 불만이었지만 이제는 넘치게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늦더라도 말씀대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늦었어도 기도하고 하는 일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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