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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헌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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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3,902회 작성일 22-07-24 08:56

본문

사무엘상 7:1-4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오늘 주의 깊게 볼 구절은 3절입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봅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손에 매여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손에 매여있다는 것은 민족적인 비극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식민지배를 당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일본제국은 우리나라의 딸들을 전장의 위로품으로 유린하고 우리나라의 아들들과 아버지들을 강제로 이송하고 학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민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의 손아귀에 목이 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도 법궤를 빼앗긴 후 20년 동안 블레셋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그들의 철병기와 조직적인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리하게도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블레셋은 정기적으로 공물을 거두고 언제든지 내킬때마다 수탈을 실시하는 정책을 이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바로 죽이지 않고 살려두되 조금씩 피를 빨아먹는 교활한 방식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너무나 힘이 없고 하찮은 민족이니 만만하게 본 것입니다.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던 방식과 비슷합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막은 파괴되고 법궤는 빼앗겼다가 다시 왔지만 하나님의 분노하심으로 기럇여야림 변방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실로에 성막과 법궤가 있었을 때는 일 년에 세 번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이 실로에 모여서 제사드리고 하나로 힘을 규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힘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 없어진 것입니다.

정말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아들 딸들을 짓밟고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죽여도 따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분노할 뿐이었고 분노가 커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만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분노와 무기력감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이상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지않지만 여전히 분노와 무기력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암울한 정치 경제 상황에서 우리는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죽어가는 우크라니아의 어린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가족간의 반목과 불화로 우리는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사업과 취업, 및 학업 등의 개인의 영역에서의 실패로 인해 우리는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우리의 분노와 무기력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못하고 늙어가고 약해지고 결국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감을 느낍니다.

분노와 무기력감은 인간 모두의 공통적인 감정입니다.

그리고 분노와 무기력감은 사단이 인간을 통제하고 장악하기에 좋은 수단이 됩니다.

블레셋은 분노와 무기력감에 빠진 이스라엘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하기위해 자신들의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전파했습니다. 

바알은 '돈' 을 뜻하고 아스다롯은 '쾌락'을 뜻합니다.

돈은 죽음마저도 극복하게 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쾌락은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줍니다.

그런데 쾌락에는 돈이 듭니다.

그러므로 '돈'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게됩니다.

하루종일 돈 생각만 하다보니 더욱 이기적이되고 야멸차게 되어 인간관계는 얄팍해지고 공허해지게되어 단기적이고 자극적인 쾌락에 집착하게 됩니다. 

돈과 쾌락은 분노와 무기력감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20년이 걸려서야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로소 돈과 쾌락를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섬겼을 때 구원은 시작되었습니다.

돈과 쾌락은 가장 강력한 중독 중 하나로 내려놓는다고 쉽게 놓아지지 않습니다.

돈과 쾌락이라는 중독을 극복한 비결이 본문에 나옵니다.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의 양식은 '전제' 로서 하나님 앞에 쏟아붓는 행위를 통해 '생명까지도 바치는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뜻합니다.

돈과 쾌락에 바쳤던 인생을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단의 선언이었습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희생과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전제와 금식 후 이스라엘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의 공격소식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운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모두 다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달라졌습니다.

예전이라면 내 한 목숨 살리겠다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정신으로 하나로 뭉쳤고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드렸던 번제는 전제와 같이 '희생과 헌신'을 뜻합니다.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하나로 뭉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에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에벤은 '반석'이며 에셀은 '돕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감사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미없이 도움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하나님께 헌신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분노와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던 이스라엘이 희생과 헌신의 제사를 드림으로 블레셋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돈과 쾌락을 섬기면 섬길수록 사람은 이기적이 되고 맙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블레셋은 강성해지고 분노와 무기력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은 가중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이야말로 분노와 무기력의 악순환을 깨뜨리고 자유를 얻게하는 비결입니다.

요즘같이 각박하고 야멸찬 현실에서 희생과 헌신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습니다.

희생하고 헌신하기가 그 만큼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희생과 헌신이 자유와 생명의 비결이 되는 역설의 진리를 우리는 본문을 통해 봤습니다.

죽으라는 말은 안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각오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자유와 생명의 길이며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갈수록 이기적인 되어가는 세대에 휩쓸리지 말고 희생과 헌신이라는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맙시다.

에벤에셀의 승리는 사무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이전에는 모든 이스라엘이 실로의 성막에 모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막과 법궤가 없어진 상황에서 어디서 모여야 할 지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었습니다.

사무엘은 생각의 틀을 깨뜨렸습니다.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성막과 법궤가 없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활약으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박해로 인해 문을 닫았을 때 오히려 복음이 아시아 유럽 사방 팔방으로 퍼져가게되는 역사를 기억합니다.

오늘날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교회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갔던 사무엘의 발상의 전환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연구해봐야 합니다.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축비와 이를 통해 기대되는 복음전파의 효과가 코로나 이전처럼과 같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교회 건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공동체 속에 파고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망라하는 복음선교의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돈과 쾌락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얻은 것은 자유와 생명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허락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은 성도의 행복이자 기쁨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주는 분노와 무기력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자유와 생명의 가치는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기주의 지옥으로 변해가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몸소 행함으로 전하며 가르칩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전제와 번제물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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