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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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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4,065회 작성일 22-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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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2-17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제사장 엘리도 레위인이고 어린 사무엘도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이라고 다 같은 레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모세의 형 아론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직계 후손이어야만 했습니다.

그에 반해 사무엘은 변두리 에브라임에 파송된 비주류 레위인 출신이었습니다.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는데 문제는 아론의 후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론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망령되이 행하여 불에 타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은 발람의 저주에 분연히 일어난 그 유명한 민족의 영웅 비느하스의 아버지 입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분은 비느하스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인 엘리의 집안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귀한 제사장의 가문으로 태어난 금수저 출신이었습니다.

태어나고보니 아버지가 대제사장인 출신 성분자체가 최고의 혜택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행실이 나쁘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17절에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바친 화목제의 제물의 남은 것을 취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대 얼마나 귀하디 귀한 특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사하기는커녕 화목제의 남은 제물에 만족하지 않고 화목제를 드리기 전 기름기가 아직 빠지지 않은 고기를 자신들의 권위로 강탈하였습니다.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은 고기만 강탈하는데 그치지 않고 회막 문에 수종드는 여인들과 간통하였습니다.

결국에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들에게 한 마디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24절의 개역개정 성경은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원어로는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가 아니라

'백성들 중에 떠도는 너희의 평판이 좋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였으니 그들은 전혀 듣질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하나님의 경고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3장에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그 때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로 알고 엘리 제사장을 찾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3: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3: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세 번째에서야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깨달은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엘리 제사장 가문의 처참한 멸망에 대해 듣게되고 이를 엘리 제사장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는 실제 현실이 되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한날 한시에 죽고 그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도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특정인을 죽이시기로 뜻하시면 반드시 죽이시고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주시지 않으시는 독재자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시고 저주하시려는 자에게는 반드시 저주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바뀌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결정론적 관점, 숙명론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결과에 대해 인간의 변경을 위한 노력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관점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우리의 구원도 믿지 않는 자들의 멸망도 다 하나님께서 아실 뿐더러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를 예정론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지만 결국엔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당장 여기서 답을 내놓기엔 무리입니다.

인류 역사 2천년 동안 논의되어왔고 지금도 논쟁 중인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정론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기로 뜻하셨고 그대로 이루어 졌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는 관점은 철저히 우리의 입장으로 국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오늘 성경 본문의 내용들이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등장 인물들은 우리처럼 모든 결과를 알고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겐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엘리 제사장에게는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과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미 정해진 것은 맞습니다만 우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의 사건들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결정론적이고 숙명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무엇하나 정해진 것 없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모든 결론을 알고있는 지금 2022년의 나의 관점로서만이 아니라 3,000년 전 아직 결과를 모르는 엘리와 사무엘의 입장으로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부터 4장의 정황으로 볼 때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경고를 받고 또 후에 사무엘의 경고를 받는 기간은 상당히 길었으며 대략 10년 이상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경고를 받고 그 경고대로 실현되었던 기간 또한 엘리가 98세에 죽었다는 단서로 미루어 최소한 10년 이상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최소한 20년의 시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20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충분한 시간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한 번만 경고하신 것이 아니라 선지자와 사무엘을 통해 두 번 경고하셨습니다.

같은 경고를 두 번 하셨다는 것은 엘리 제사장을 저주하셔서가 아니라 엘리가 회개하고 반성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받아주시려했던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결정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은 절대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차고 넘치는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붙잡느냐 아니면 발로 차느냐는 본인 스스로의 몫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지만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결국 관건은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게 하는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겸손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대신 결정론적 숙명론을 핑계삼고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원망하는 자들에게 본문은 조금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어떠한 악인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다'라고 핑계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쏟아부어주시는데도 악인은 회개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1. 교만

두 번에 걸쳐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엘리 제사장의 반응은 놀랍게도 무덤덤하였습니다.

3: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여기서 '선하신 대로' 는 원어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엘리 제사장의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안다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회개하도록 경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는 죄악' 이라고 합니다.

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모르고 짓는 죄도 죄이지만 알고서도 짓는 죄, 알면서도 가만히 두는 죄는 더욱 큰 죄입니다.

알고 짓는 죄를 계속 반복하거나 방치하는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죄를 짓고 있지만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회개 할 수 있고 조만간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이는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회개를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돈 갚는 것과 죄 회개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은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아는 죄악'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교만이며 우리를 패망에 이르게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는 죄악'을 끊지 못했고 마침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2. 탐욕

엘리의 아들들만 화목제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저주가 실현되어 엘리 제사장이 한날 한시 두 아들을 잃고 충격으로 그의 과체중으로인해 목이 꺽여 죽은 정황으로보아 평소 그의 탐욕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화목제물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는 탐욕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레위인들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유리하던 때였습니다.

마땅히 그들과 화목제물을 나누어야 했지만 엘리는 움켜쥐고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엘리 제사장의 탐욕때문에 많은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처소를 떠나 북쪽 에브라임 산지에 흩어져서 이방종교를 혼합하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을 흩어지게한 악한 나비효과를 불러 왔던 것입니다.

대다수의 레위인들이 빈곤에 시달려 빼빼 말라가는 동안 자신은 너무나 살이 쪄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엘리 제사장의 눈이 어두워져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당뇨로 인한 실명 증상을 여실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버지 엘리 제사장의 탐욕을 보고 자랐을 터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른 행악 또한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것입니다.

탐욕은 교만 못지않게 하나님께 회개하는데 크나큰 장애물이 됩니다.

엘리와 두 아들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았더라면 회개의 은총이 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두 손을 움킨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없습니다.

손을 펴고 나누어야 회개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이웃과 나누며 이웃에게 베푸는 선행을 가르쳐야 합니다.


3. 말씀의 부재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직접 경고하지 않으셨으며 선지자와 사무엘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선지자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교만과 탐욕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버렸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무엘처럼 내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애통해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통해 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며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폼만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와 사무엘 처럼 특정인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던 구약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는 팔만 펴면 성경을 펼쳐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읽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돌이켜 겸손하게 되고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탐욕을 버리고 이웃과 나누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지 스스로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교만과 탐욕에 사로잡힐 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물질과 돈이 우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무엘처럼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변화받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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