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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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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5,919회 작성일 21-08-0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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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14-21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주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조상들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고 하라 하였더니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38년 동안의 방황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대로를 따라 에돔땅만 통과하면 거기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형제의 민족이 이스라엘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의 대로를 포기하고 우회하던 중 호르산에 이르러 모세와 더불어 영적 정신적 지도자 아론을 떠나보내었습니다.
형이자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은 모세에게 있어서 지난 38년 동안의 수많은 고비와 고난을 통틀어 가장 큰 아픔이었음은 분명합니다.

21:1-3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스라엘이 에돔을 피해 우회한다는 소식에 아랏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얕보고 공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과의 전쟁을 허락하시지 않으셨지만 아랏 사람들은 공격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름을 '호르마' '궤멸' 이라고 붙일 정도로 철저하게 진멸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곳은 민수기 14장에 보면 38년 전 열두 정탐꾼 사건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억지로 가나안을 공격했다가 패퇴당한 수모의 역사가 새겨진 땅이었습니다.
38년 전의 빚을 갚은 통쾌한 승리이기에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순종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21:4-5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에돔과의 충돌을 피해 우회하는 모세를 반대하던 강경파들은 아랏 사람들과의 전투를 통해 승리를 맛보게 되자 더욱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에돔 땅을 우회하는 세렛 강을 따라 호르산을 돌아가는 코스는 너무도 험악하였습니다.
강경파들은 다시 왕의 대로로 돌아가 만나는 적들을 다 해치우자고 모세를 압박하였습니다. 
더구나 모세의 든든한 지원군 대제사장 아론이 이젠 없으니 제대로 모세를 흔들어 보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의 불평과 선동으로 인해 왕의 대로라는 쉽고 편한 길을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인가 원망하는 마음들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어서 죽겠다고 했지만 이는 명백한 과장이요 거짓말이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가 있었으며 부족하긴 하지만 버틸 수 있는 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만나를 '이 하찮은 음식' 이라고 폄하하며 원망하였습니다.
지난 38년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고 공급해주신 하나님의 양식을 이제는 '하찮다'라며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 덕택에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의식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각종 산해진미는 없지만 그래도 굶주릴 걱정없이 먹여주시고
최신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어죽을 걱정없이 입혀주시고
구식에 초라하지만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집을 주셨습니다.
거기다 해와 달, 공기와 흙, 대자연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수많은 질병의 위험 속에서도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이것이 '일반 은총'입니다.

일반 은총보다 더 귀한 은총이 있으니 '특별 은총' 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 만나인 성경말씀을 주십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영적인 만나가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매일매일 공급되어 집니다.

무엇보다도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하나남의 자녀들로 불러주신 구원의 은혜는 모든 은혜들 중 가장 귀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기서 불뱀이라니까 상상 속의 신비의 동물이라고 추측해서는 안됩니다.
히브리 원어에 불뱀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정관사가 없지만 영어와 히브리어에는 정관사가 있어서 이게 모두가 다 익히 알고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것인지를 구분해 줍니다.
원문의 정관사를 통해 불뱀은 전혀 생소한 신비의 동물이 아니라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독사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물렸다하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운 고통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독사인 것입니다.

21:7-9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부탁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햇습니다.
놋으로 불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났게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장대 위에 매달았다는말은 거창하고 위엄있게 보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로 사형수나 포로를 죽여 매달 때 쓰는 말입니다.
완전히 무기력하게 묶여 누구에게나 멀리서도 눈에 띄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원문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살아 날뛰는 불뱀의 형상이 아니라 죽임을 당해 축 늘어져 불뱀의 모습을 뜻합니다.
이 불뱀 자체가 치료자나 구원자를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마음 속의 악함과 죄악을 상징하며 장대에 매달림으로 무력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놋뱀 사건때부터 놋뱀을 '느후스단' 이라는 치료의 아이콘으로 우상화하여 800년 후인 히스기야 왕이 놋뱀 우상을 부술 때까지 숭배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요한복음 3:16 을 거의 다 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그 바로 앞 구절은 잘 모릅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요한복음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은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축 늘어진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과 위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죄때문에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확실한 사실 두 가지를 보게됩니다.

첫째, 나의 죄는 참혹하고도 비열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것으로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한다.

두번째, 하나님을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놓으셨다.

구원의 확신은 막연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죄를 깨닫는 것,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죽음도 불사하시는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불뱀 사건을 통해 단지 놋뱀을 쳐다봤다는 것만으로 살아났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사건은 이 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변화받은 것입니다. 

21:10-15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오늘날 이 곳의 지명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14절에 언급되는 여호와의 전쟁기는 이스라엘의 승전을 축하하는 모세의 송축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전쟁기'는 본문의 민수기 이 후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어떻게 민수기에 언급되었는지 의문을 일으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쓴 것으로 모세오경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900년 후 에스라가 편집하고 추가 첨삭을 한 것으로 여겨지나 이는 극히 일부이며 모세가 쓴 대부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에스라의 편집 또한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진 것이므로 모세오경이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대로를 우회하여 험난하고 험준한 산과 계곡을 오르내리고 혹독한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뎌야 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21:16-17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마침내 이스라엘은 브엘, 즉 우물에 다다릅니다.
그간 '마라'  '르비딤' '므리바' 로 불리는 원망의 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순탄한 은혜 가운데 공급하시는 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죽겠다고 힘들다고 원망하며 얻는 물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고 견디니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주시는 은혜의 물이 바로 '브엘'의 물입니다.
사람은 먹는 물이 중요합니다.
'므리바'의 물만 마시면 습관이 되어 또 원망합니다.
참고 견디어 '브엘'의 물맛을 알게되면 더욱 힘내어 믿음의 승리와 보람을 얻게됩니다.

참으로 인생은 힘든 광야임이 분명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바라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인생이니까요.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더욱 삶은 힘들어지고 미래는 불안합니다.
부동산, 주식, 코인 등등 일확천금을 노리며 '모 아니면 도' 인 극단적인 인생행태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지만 하나님 안 믿고도 나보다 잘먹고 잘살고 폼나게 사는 세상 사람들보면 지금 뭐하는겐가 회의가 듭니다.

그러나 인생 광야에서 진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어 없어서 양식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안의 탐욕, 나의 이기심, 나의 허영과 자존심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광야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나의 죄와의 싸움이 쉬울리 없고 편할 리 없습니다.
죄와 싸우는 과정에서 육신은 힘이 들고 정신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죄에 지고 육신에 지고 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지난 한 주 영적 육적 싸움에서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을지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항상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세요.
교회 공동체를 떠나지마시고 참고 버티고 인내하세요.
피곤한 육신의 유혹을 이기고 성경말씀 읽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불안한 마음에 굴복하지 말고 기도로 이겨보세요.
마음의 원망과 싸우고 탐욕과 이기심에 대항하세요.
마침내 브엘의 물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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