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데스의 기대 > 주일오전예배

본문 바로가기


가데스의 기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47회 작성일 21-07-04 08:37

본문

민수기 20:1-5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 땅의 입구인 가데스 땅에 이르렀습니다.

첫째 달은 광야 여정의 40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가데스'는 아름다운 샘이란 뜻입니다.

이 곳은 사막의 여행자들에게 물과 휴식을 제공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까지만 가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거기엔 물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속은 기대가 무너졌을 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며 원망하였습니다.

현재의 광야를 '이 나쁜 곳'으로 부르며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이 더 좋은 곳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또 다시 위기를 맞게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 영생얻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이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는 나의 생존의 문제이며 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는 원인입니다.

성령충만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뜨겁고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끊긴다면 그 이후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해야할 그들인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하는데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은 커녕 원망이 가득한 이스라엘과 우리의 원인을 진단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 라는 곳에서 '아름다운 샘물'을 기대했습니다.

최소한 마실 물은 있겠지라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소박한 기대가 무너지자 그들 자신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이 항상 꽃길일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는 이미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존요건에 대한 기대치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수백리 메마른 사막을 걸어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데스' 아름다운 샘물은 당연한 권리였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피와 땀과 눈물의 댓가, 그간 고생해온 보람은 당연히 내 몫이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 입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 대신 '죄'를 선택하였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의 댓가를 대신 지심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대신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셨듯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의 죄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이렇듯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죄와 싸워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건강장수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데스' 아름다운 샘물을 기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가데스'의 기대가 무너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묵은 '애굽'의 행복론을 펼치며 무화과와 포도와 석류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가데스의 기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애굽의 행복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광야의 행복론'을 배워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물과 음식이라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채워져야할 기본적인 것으로 인해 고통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결핍'을 주었습니다.

'결핍' '부족함'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공포에 이르도록 우리를 협박하고 짓누릅니다.

사람들은 결핍을 채우기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고 빼았으므로 더 큰 죄를 짓고 더 큰 결핍을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결핍' '부족함'의 문제는 모든 인류의 아픔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마르게 하셨을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서 저와 여러분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걱정하고 근심하게 하실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 있는 상태에서 물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모든 것이 충족되면 우리 인간은 더욱 마음껏 '죄'를 짓고 결국엔 죽게 될 것입니다.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 '공급' 한다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결핍'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0:6-8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사막에서 물을 찾으려면 조금이라도 부드럽고 축축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단단한 반석은 물과는 가장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반석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많은 물을 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핍'의 상황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일도 제자 빌립의 계산이 아니라 오병이어를 바친 소년의 믿음이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가난한 과부와 선지생도들을 공급하신 것도 똑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럴싸하고 납득이 가는 것은 쉽게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단단한 나의 껍질이 완전히 부숴지는 사고와 인식의 전환에 이르는 믿음은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없습니다.

'결핍'의 상황에서 아무런 계산과 방법이 무용지물일 때 내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함으로 진정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풍족함'이 아니라 '결핍'을 통해 얻게됩니다. 

'부족함'이라는 똑같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제 믿음으로 나눠주며 희생하며 버티고 기다립니다.

나도 목마르지만 더 목마른 사람에게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나눔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상상을 넘어 공급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결핍' 때문에 더욱 죄짓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핍'을 통해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결론)

믿음 생활이 힘든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아직도 가데스의 기대, 애굽의 행복론을 놓지 못한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면 이러한 인생의 막연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기대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결핍'의 문제를 잊지말고 이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협박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툭하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며 입으로 범죄하였습니다.

도저히 자격도 안되고 깜도 안되는 사람을 사랑하나로 결혼 했더니 조금만 힘들어도 이럴 바엔 차라리 헤어져,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며 원망한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자격도 안되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시어 언약을 맺어 주시고 이집트 노예에서 구원해 주셨건만 죽는 게 낫고 차라리 이집트가 더 낫다는 말 속에 원망을 통해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악한 의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죄악과 결핍의 세상에서 나의 필요를 채울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해먹으려는 시도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도 모자를 판에 내 맘대로 안해주면 콱 죽어버릴 거라는 협박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들로 세우셨습니다.

죄와 결핍이 가득한 세상에서 죄와 싸우고 결핍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용사로 세우셨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가데스의 기대 애굽의 행복에서 깨어나 그리스도의 용사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감사함으로 감당합시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47건 1 페이지
주일오전예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547 한순복 50 04-21
546 한순복 104 04-14
545 한순복 172 04-07
544 한순복 309 03-24
543 한순복 377 03-10
542 한순복 464 03-03
541 한순복 566 02-18
540 한순복 569 02-11
539 한순복 605 01-21
538 한순복 702 01-14
537 한순복 676 01-07
536 한순복 774 12-25
535 한순복 755 12-24
534 한순복 760 12-17
533 한순복 782 12-10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