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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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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75회 작성일 20-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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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1-3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온 요셉은 이집트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거기서 요셉은 좌절하기는 커녕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요셉은 노예생활을 통해 오히려 한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 환경은 인생을 결정하나 그 환경을 뒤집는 것은 인간의 꿈이다.

아무리 열악한 노예생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된다면 그 어떤 환경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강한 믿음을 얻게되었습니다.
꿈이 없었다면 부모탓, 형제탓, 나라탓, 환경탓, 팔자탓으로 원망하며 좌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믿었기에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오히려 기회로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나타나자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아 집안의 모든 일을 위탁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의 히브리 소년이 문명의 중심지 이집트에서 가정 총무가 되는 급격한 신분의 상승을 맞게된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반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행동은 그가 속한 환경에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반박할 수 없긴 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지만, 한 사람의 꿈은 그 환경을 뒤짚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2. 실력은 스스로 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하심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통하게 하심을 잘못 이해하여 인간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요셉이 꿈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은 별다른 정황을 밝히지는 않지만 요셉은 실로 엄청난 노력파인 것이 분명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을리 없는 요셉입니다.
그런 그가 가정 총무가 되었다는 말은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승진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집트는 십진법을 사용한 최초의 문명이며 당시 상상도 할 수 없는 백만이라는 숫자단위까지 보유하였습니다.
해마다 범람을 반복하던 나일강 유역 땅의 소유권을 기록하기위해서 한 걸음이라는 길이를 백만단위까지의 면적으로 계산하여 기록한 이집트 문명은 가나안 사람들에겐 완전 딴세상이었습니다.
하나의 피라미드에 230만개의 바윗돌들이 동원된 것도 이러한 이집트의 수학의 발전에서 그 원인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 보디발의 부동산과 회계를 총괄 담당하는 가정 총무가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수학 능력이야 어떻게든 배운다고 칩니다.
가나안 땅에서 낳고 자라 문자라는 개념도 없는 요셉이 그 어렵다는 상형문자를 배워 기록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까지 쏟아야 했던 엄청난 노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서 쌓은 수학과 상형문자 실력은 훗날 이집트의 총리로서 중요한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저절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요셉의 꿈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하는 동기요 원동력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꿈이라도 꿈에서 멈추면 개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 꿈을 믿고 그 꿈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이 진짜 꿈이 되는 것입니다. 


3.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실제 세상은 다르다.
요셉의 꿈이 이집트 친위대장의 가정 총무에서 끝날 리 없습니다.
요셉은 주인의 아내를 추행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 노예가 이러한 죄를 범했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재판도 못받고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의 품성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 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요셉이 억울함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의 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본문은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을 때와 똑같이 요셉의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습니다.
본문은 별다른 정황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요셉은 감옥에서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고 보며 겪으면서 세상의 민낯과 밑바닥을 발견하는 기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은 감옥 생활을 통해 계급 지위 학식 빈부를 떠난 인간의 기본적인 초라함과 나약함 그리고 인간의 밑천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겉으로는 이집트의 뛰어난 문화와 문명의 이면에 감춰진 더럽고 흉악한 인간의 군상들이 가득했습니다.
노력만 하면 뭐든지 된다라는 순진한 환상이 깨지고 세상은 억울한 사람들과 악하고 나쁜 사람들 투성이임을 제대로 배우게 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수학과 언어를 배웠다면 감옥에서 사람의 아픔과 그들을 공감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사람의 다양성과 함께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의 동질성도 발견함으로 요셉의 마음의 폭과 넓이와 깊이를 더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감옥에서의 경험은 훗날 이집트 총리가되어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해결 처리하는데 넉넉한 내공이 되주었습니다.

 
4.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옥에 갇힌 요셉은 이집트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꿈을 꾸게되고 요셉의 그들의 꿈을 통해 그들에게 닥칠 일들을 해석해 주니 그 해석되로 술 맡은 자는 복직이 되고 떡 굽는 자는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요셉은 복직되는 술 맡은 자에게 해몽과 함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40: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리고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인간은 어려워 도움 받을 때와 도움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라 그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요셉의 입장에서 술 맡은 자가 복직되어 출소할 때 마치 자기가 나가는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것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달이 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요셉의 기다림은 이년을 꼬박 채우게 됩니다.
어쩌면 요셉의 노예생활 7년과 감옥 생활 6년 중 이 마지막 2년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아무런 기대가 없었으면 괜찮았을텐데 한 가닥 기대가 무너지니 그 실망감과 그로 인한 분노는 요셉을 가장 힘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요셉은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기대를 걸면 처음에는 간쓸게 다 내어줄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 틀어져서 서로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할 것도 집착할 것도 없게됩니다.
진실한 신앙인들은 이러한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초월 초탈해야합니다.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결국엔 하나님만 남는구나, 하나님 밖에 믿을 분이 없다라는 진리를 제대로 배워야합니다.
이 진리를 제대로 배운 요셉은 향후 이집트의 정치 권력의 정점에서도 초심을 잃지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성공을 향한 열차의 무임승차권이 아닙니다.
요셉은 꿈이 있었기에 그 모든 어려움들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들은 요셉이 갖춰야 할 국가적 아니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소양과 역량을 기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탓하고 문제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지만 결국 결론은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정당하다는 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확실히 믿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난관들이 오히려 꿈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는 한판의 뒤짚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바꾸신다는 확신을 가집시다.
우리 앞의 모든 장애물들은 우리의 꿈을 실현시키고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일 뿐임을 믿읍시다.
우리의 꿈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뒤짚으시는 하나님의 스토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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