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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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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34회 작성일 20-10-2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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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길을 가다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용기를 얻어 풀어야 할 응어리를 푸는 첫 단계를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형 에서에게 사자들을 보내 화해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람이 크고 유명해지면 지명을 그 사람의 이름에서 따오게됩니다.

당시 에돔은 큰 세력을 형성하여  자기 이름을 따서 세일 땅 에돔 즉 털복숭이 붉은 땅이라는 지명까지 갖은 거의 국가의 형태를 갖춘 실력자가 되어있었습니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사자들의 소식에 야곱은 두렵고 답답해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것은 환영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과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키려는 의도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힘으로도 숫자로도 상대가 안되는 에서에게 이길 도리는 커녕 도망갈 도리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야곱의 주특기인 잔머리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일단 자신의 가축들을 반반으로 나누어 에서가 한쪽을 치면 다른 쪽을 데리고 도망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에서에게 바칠 가축들을 세 떼로 나누어 미리 앞장세워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향한 에서의 분노를 누그러뜨릴까하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유일한 무기는 잔머리였습니다.

그의 이름조차 '잔머리로 남을 속이는 자' 야곱입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의 잔머리는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기위해 붉은 죽을 동원하고 급기야 털옷을 입어 에서인 것처럼 변장하여 아버지 야곱을 속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라헬로 변장한 레아와 결혼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의 댓가를 착취하던 라반에게 잔머리로 한방먹여서 많은 가축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4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오는 에서 앞에서 더이상 자신의 잔머리는 아무런 힘도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자랑하며 그것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전도유망한 연예인들이나 실력있는 전문가들이 실수 하나에 심지어 과거의 잘못 하나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로도 자신이 믿고 의지하였던 재능과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가 사는 무서운 인생이요, 냉엄한 현실입니다.



:22-23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에서가 이끄는 400명의 군사들앞에 야곱은 자신이 쌓은 20년에 걸친 장기간 수고의 댓가이자 평생의 든든한 기반인 재산과 가축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주식과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옛날처럼 순진하게 열심히 일하고 아껴쓰고 저축해도 집한채 마련할 수 없게되자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고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믿을 것은 주식과 부동산 밖에 없다고 언론은 계속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한 방에 국가의 경제를 넘어 국제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에 코로나가 아닌 생각지도 못한 재해 한방에 주식과 부동산 뿐만 아니라 평생 기반인 연금마저도 한순간에 날라가버릴 수도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먼저 자신의 가족들과 가축들을 강 건너로 보냈습니다.

야곱은 이제 철저히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20년전 이 강을 건널때와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에게는 선택지가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족과 가축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치는 것입니다.

이는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대로 강을 건너가 사백명의 군대와 싸우다 죽는 것입니다.

야곱이 살아온 그간의 인생을 볼 때, 아마도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재산도 버린 채 목숨을 구하고자 혼자 도망칠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강건너편에서 사백명의 군사가 당도해 소란을 일으키면 바로 도망칠 계획도 세웠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가지 변수가 생겼습니다.

난데없는 씨름입니다.

지금 군사 400명을 상대해야 하는 야곱인데 한가하게 씨름이나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갑자기 어떤 사람이 덤벼와서 다짜고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과 씨름을 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얍복 나루에서 미꾸라지 야곱을 무장해제시키시고 철저히 코너로 몰아넣으신 분도 예수님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야곱은 일단 예수님과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씨름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딱 두번 나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입니다.

어원은 발 밑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다는 뜻입니다.

바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남의 다리를 움켜잡고 놓질 않는 것으로 이를 밤새도록 하였다고 했습니다.

야곱의 씨름은 우리나라의 씨름처럼 샅바를 가지고 격식을 갖춘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씨름도 밤새도록한다면 사람 꼴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규칙이나 격식도 없는 다리 붙들고 매달리기를 밤새도록 한 것입니다.

말이 씨름이지 팔이고 다리고 할 것없이 무조건 닥치는대로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사람만 붙잡으면 반드시 사는 길이 생긴다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왠지 이 사람한테 축복 받으면 반드시 살길이 열릴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한 이 사람 놓치면 난 끝이다라는 생각에 야곱은 그의 인생 처음으로 마지막 한방울의 에너지까지 동원하여 그를 붙잡았습니다.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놀랍게도 야곱은 밤새도록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동안 누군가를 이기기위해 자신의 잔머리와 속임수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잔머리를 쓰지않고 얻은 유일한 승리였습니다. 

진짜로 내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돈과 재산, 주식과 부동산, 연금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야곱의 승리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능력을 가졌어도 이것들은 어느 한 순간 날라가버릴 것들이기에 붙잡으면 붙잡을 수록 더욱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많은 재산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진짜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 사람, 그리고 그것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예수님과 싸울 자격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려면 먼저 자기 고장 자기 나라에서 챔피언이 되어야 하고 자기가 속한 대륙에서 챔피언이 되어야 겨우 세계 챔피언과 싸울 수 있는 자격을 얻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와 뒤엉켜 흙먼지를 뒤집어 쓴채 씨름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붙든다고 붙들릴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젖먹던 힘, 마지막 남은 최후의 땀 한방울까지 이끌어내시는 예수님은 야곱 뿐만 아니라 그를 간절히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져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집의 젖먹이 아기가 처가집에 있는데 어느날 보니 장인 장모님, 애기 엄마 모두 녹초가 되어 자고있는데 아기 혼자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옹알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 하나에 어른 셋이 녹초가되어 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배고프면 목숨걸고 우는 아기한테 언제나 지는 엄마처럼 우리가 목숨걸고 붙잡으면 언제나 져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실감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지방 소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기꺼히 붙잡히시고 져주시는 예수님이 있기에 우리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6-28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예수님은 승리한 야곱에게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예수님의 축복을 순간적, 일시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융통을 시켜주신다거나 병을 고쳐주시고, 아파트나 주식이 몇 배로 껑충 뛰거나,  어려운 시험을 합격하게 해주신 것들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이 받은 축복은 개명이었습니다.

개명은 한순간이지만 그 이름다워지는 것은 평생입니다.

우리는 내가 야곱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속이는 자 야곱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의 못된 인성, 할아버지 아버지, 나로 이어지는 대를 이은 죄성과 약점들은 내가 살아온 세월 만큼의 전통과 연조를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죄성과 약점들을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를 벌하고 저주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들을 망각하지 말고 저주의 대상이 아닌 보완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시험이든 저득점자들은 자신이 맞춘 문제를 기억하지만 고득점자들은 자신이 틀린 문제들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야곱으로서 살아온 내 인생의 기간이 길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죄성을 경계하고 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개명의 축복입니다.


두번째 예수님께서는 새 이름 이스라엘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개명의 축복을 받은 나는 이제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나는 이스라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자, 그래도 죽지 않은 자, 오히려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와 세상의 경제가 무너져도, 온 세상에 바이러스가 퍼져도, 주식과 부동산과 연금이 휴지조각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예수님의 다리를 붙잡은 이스라엘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마지막으로 나는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빠진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허벅지 관절은 하체의 중심이며 중심이 흐트러지면 상체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허벅지 관절은 힘의 원천인데 이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 바람에 야곱은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압니다.

이것이 진짜 축복이라는 것을요.

그는 걸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는 절뚝거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온전히 걸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축복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무엇인가를 잃을 때 진정한 축복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처럼 신체의 중심을 잃었지만 오히려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큰 상실을 경험하고 낙담하고 좌절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침내 형통하게 되는 놀라운 승리를 보여줍니다.

젊고 건강했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지 못했는데 오히려 늟고 약해질 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내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나의 튼튼한 두 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결론을 얻게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개명의 축복을 받았지만 당장 모든 것이 형통하고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많은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갖은 마음고생과 눈물 고비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개명의 축복 이 후에 야곱은, 아니 이스라엘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는 자신의 잔꾀와 속임수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 요셉이 살아돌아와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야곱의 가정은 회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야곱의 인생 마지막은 아름답게 마무리 됩니다.

우리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진짜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 예수님을 꽉 붙잡고 절대 놓지 않는 야곱의 자녀들,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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