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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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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60회 작성일 20-08-02 10:34

본문

창세기 15:6-7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람은 이전 장 14장에서 요단강 유역의 5개 신흥국을 물리친 메소포타미아의 4왕들은 아브람의 조카 롯을 비롯하여 요단강 유역의 사람들을 노예로 삼기위해 끌고 갔습니다.

아브람의 부하 318명과 서가나안의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오직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기습을 시도하였고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 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기적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메소포타미아 4왕들이 보복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적인 은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운이 한번 좋았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은 대다수 성도들도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하나님이 아브람을 지키는 방패시요, 하나님이 아브람의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상급이다' 라고 말씀해주시다니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일입니까?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상급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아브람은 무엇을 주시겠느냐고 묻습니다.

:2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상으로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반응 대신 아브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말합니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또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직 주지 않으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지만 우리는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주신다고 말씀하셔도 정작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믿지 못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1. 나에게 없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2.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직 주지 않으신 것에만 몰두합니다.

바로 우리가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대표적인 이유 둘을 아브람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도 우리처럼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바로의 손에서 구하시고 수많은 가축과 은금을 주신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말도 않되는 중과부적 열세임에도 메소포타미아 4왕을 물리치고 조카 롯을 구한 일은 바로 엇그제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셔서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상급이다' 라고 말씀하셨어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지 못함도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심이 더욱 많았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내가 나를 아는데 나같은 놈이 뭐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실까라는 당연한 의심입니다.

착하고 돈많고 잘생긴 남자가 청혼하는데 나같이 못생긴 여자가 뭐라고 이럴까하는 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못나고 못된 나를 사랑하실리 없다는 의심입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의 취향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보이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헛수고 헛발질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선행과 성경 지식, 오랜 금식과 기도, 훌륭한 학식과 고매한 인격,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가정적인 성실한 모습들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절대로 하나님께 어필할 포인트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사람 자체는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얼마전 제 목숨 구하고자 자신의 아내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이고 이집트 바로에게 바치려고 했던 지극히 일반적이고 지극히 평범하고 비겁한 유약한 보통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주시고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 되어주신다니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람도 아브람이지만 나를 생각해보면 더욱 갑갑합니다.

별볼일 없고 가난하며 구석진 지방 소도시 시골에서 살아보겠다고 이리 부딛히고 저리 부딛히는 한심한 인생입니다.

어느덧 주름살만 가득한 가진 것없고 이룬 것없고 해놓은 것없는 보통의 늙은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나를 과연 하나님께서 생각이나 하실까 언감생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 의이시기 때문입니다.

의이신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의롭다 여기신다는 것은 철저히 내 편, 내 새끼, 내 사람이라는 완전한 인정을 말합니다.

완전히 그에게 올인하신다는 말입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주시되 하나님을 주시고 심지어 그의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시는 것이 대단한 일인데 그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입니다.

아브람이 잘났든 못났든 많이 배우든 못배웠든 부자던 가난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믿느냐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보통 결혼 정보회사에서 총 600개 이상의 항목을 조사하여 0점부터 50점까지 신랑 신부의 등급을 매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딱 한가지 항목만을 인정하시며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은 보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만 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음마저도 왜곡하고 변질시켰습니다.

믿음에도 등급을 매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교회다녔나, 헌금 얼마나 하나, 성경 몇번 읽었다, 기도 몇시간 하나, 봉사, 선교 등등 믿음에도 등급을 매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믿음의 요소들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1) 첫번째 믿음의 조건 -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10:17 KRV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아무말이나 들어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리고 그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게 없는 것, 내가 받지 못한 것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상급이시라는 말씀을 매일 매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읽는 말씀대로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자세를 돌아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내게 임하셔야 믿음의 조건이 갖춰진다는 면에서 믿음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2) 두번째 믿음의 조건 - 성례와 예수 그리스도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을 위해 또 다시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였던지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람에게 믿음의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믿음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아브람이 의심병 환자가 하나님께 믿음의 근거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면 제대로 믿기 위해 믿음의 근거는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믿음의 근거를 보여주시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당시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계약의식을 명령하셨습니다.

짐승을 둘로 쪼개어 그 사이를 계약자 둘이 지나감으로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고대의 의식입니다.

지극히 신성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눈 높이에 맞추어 짐승을 희생시키는 고대의 미개한 의식을 택해 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계약 의식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약의 당사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늘날 예배에도 많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 중요하다, 즉 사람들에게 보이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예배인가를 철저히 점검하고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원래는 하나님과 아브람 두 사람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 언약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아브람은 다음 장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버리고 아내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두고두고 근심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책임은 당연히 아브람이 져야하지만 쪼갠 고기를 지나간 당사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언약 파기의 책임을 지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언약을 성취하시고 아브람을 비롯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어주시고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의 횃불 언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죄의 대속을 제사를 통해 보여주시고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 또한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성취를 다시금 기억하고 믿음을 확증한다는 면에서 본문의 횃불 언약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성취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에 근거가 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믿음은 허무맹랑한 자기 최면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명확한 대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는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기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완전한 의로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 -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7절에서 자신이 거하는 척박한 서가나안 땅이라도 간절하던 아브람에게 애굽부터 유브라데까지 당시 시대에서 사실상 온 세상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들 하나가 없어서 걱정하는 아브람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상 셀 수 없이 많은 수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을 통해 머지않아 세상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영광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언약을 지켜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언약을 못지켰어도 단지 믿음 하나는 지킨 것이 오늘날 이러한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히브리서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없으면 그 즉시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믿음의 반대인 두려움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바라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은 믿음을 필요로하며 이는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 하나님을 통해 펼쳐지고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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