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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에 이르는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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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321회 작성일 20-03-2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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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빌레몬서는 단 한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서신이며 빌레몬이라는 골로새 지역의 성도가 수신자입니다.

이 서신에는 복음이나 교리에 대한 언급이 없고 지극히 사적인 내용인지라 과연 성경 66권의 한자리를 차지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 사도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성화되어가는 모습들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복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현장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되어 투옥 중에 골로새에서 온 오네시모라는 죄수를 만났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으나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 체포된 자였습니다.

오네시모가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낳고 자란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차피 살아도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죽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미치고 그는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범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감옥에 투옥되어 더이상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하나님은 마침 예루살렘으로부터 호송되어온 바울과 그의 일행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그런데 마침 바울과 함께 투옥된 동역자 에바브라가 골로새 출신이었기에 오네시모를 알아 보았습니다.

에바브라는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데리고 가서 복음을 듣고 변화받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많은 크리스챤들이 생각하는 참회와 회개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받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럼 다 끝난 것일까요?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 진짜 회개 가짜 회개


바울 사도는 석방되는 오네시모에게 한가지 크나큰 숙제를 안겨주었습니다.

:12-14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로 주인 빌레몬에게가서 용서를 구하고 훔친 것에 대한 보상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회개하고 다시 태어난 오네시모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리한 숙제였습니다.

로마시대 당시 도망치다 잡힌 노예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당시 주인들은 도망쳤던 노예를 쉽게 용서했다가는 다른 노예들에게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기에 본보기로 처형함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삼았습니다.

이렇듯 주인 빌레몬에게 다시 가라는 것은 죽으러 가라는 말이나 같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오네시모와 같음을 고백합니다.

인생의 밑바닦에서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우리도 오네시모와 같은 무거운 숙제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나로 인해 손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온전한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용서 받았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으니 다 해결된 일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용서받은 자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더욱더 내가 손해를 입힌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값을 치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요, 구원입니다.

많은 교회가 구원론을 가르치고 회개를 외치지만 참다운 구원과 회개는 나 혼자 변화받아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쉽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고 피해입은 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값을 치루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 본문의 오네시모의 케이스처럼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말로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포기하는 지점이 이 부분입니다.


2) 화목케하시는 하나님 / 책임져주시는 하나님


이렇게 구원받은 것이 어려우면 어떻합니까?

그동안 목사님이 예수님만 믿으면 값없이 구원받고 영생 얻는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니요?

내가 피해입힌 사람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면 뭐하러 구원받나요?

구원받은 것이 아무런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나의 구원은 나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피해자들과의 관계 회복 또한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결코 손놓고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나의 피해자들에게 나보다 먼저 설득해 주십니다.

:16-17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 하나님은 주인 빌레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설득하심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하게 하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우리 대신 우리의 책임을 대신 져주십니다.

:18-19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 사도는 만약 빌레몬이 오네시모의 절도 피해의 보상을 요구한다면 지불 능력이 없는 오네시모 대신 자신이 그 책임을 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책임에 대한 보상을 대신 지불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갚을 돈이 있는데 너무 커서 내 능력을 초과할지라도 일단 내 능력만큼만 갚아나가면 됩니다.

내가 도저히 못 갚으면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실터이니 먼저 용서를 구하고 최선을 다해 아무리 작더라도 내게 있는 것만큼은 다 되돌려 주는 것이 진정한 회개요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3) 다가서는 용기


이 후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피해보상 금액을 요구하지 않았는지 그 후 결과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알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오네시모가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와준 것만으로도 빌레몬이 감동하여 용서하였으리라 추측하며,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다시 가는 것말입니다.

오네시모의 사과나 피해보상의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다시 간 것입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용기만이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을 대신 책임져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요구하신 몫은 바로 다가 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용기내어 다가서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시고 다 해결해 주십니다.

물론 먼저 다가서는 용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미안은 하지만 용서는 받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죽을 것 같고 감당이 안 될 것같아 거기서 멈추는 회개는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이 "내가 잘못했다"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수많은 적들이 물어뜯고 결국엔 매장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사과와 반성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점점 사과와 반성을 기피하면 이제는 아예 생각을 바꾸어 자신이 잘못한 것도 뭐든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결국엔 그렇게 믿어버립니다. 

그렇게 사람의 양심은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한 만큼에 상당하는 책임을 지우시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우리가 먼저 우리가 잘못한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을 가장 원하십니다.

일단 다가서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먼저 다가서는 오네시모의 용기를 구하십시오.


4) 구원 : 관계의 회복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구원해주시면 될 것을 가지고 일을 복잡하게 만드실까요?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가게 하시면 될 일을 왜 굳이 내가 잘못한 사람에게 다가서게 하실까요?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구원의 능력은 죄인이 내가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구원을 넘어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한 자로 인정받는데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동시에 이를 통한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필요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한몸되어 하나의 완전체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사람 취급받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특히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모형입니다.

교회 성도들간의 관계는 교회의 존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1-2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별도의 건물이 없었고 성도들의 집이 교회 였음을 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가 구원받아 새사람이 된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빌레몬의 집, 아니 빌레몬의 교회가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설득하여 빌레몬의 집, 아니 빌레몬의 교회로 다시 보내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 행동하는 회개만이 교회를 회복시키고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5) 결론 : 회복에 이르는 회개

말로만 구원받고, 생각만으로 회개하는 절름발이 믿음에 머물지 마십시오.

나를 구원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면

설령 죽을지라도 먼저 다가가 용서를 구하고 책임을 지는

진정한 회개의 은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회개는 혼자 뉘우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관계의 회복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우리의 몫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딛고 다가가기만 하면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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