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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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은 삼십 냥에 주님을 판 비참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은 30냥은 노예 한 사람의 값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값싼 존재로 여긴 배은망덕한 망령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아 사도직은 최고로 영예스러운 직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 썩어지면 가장 더러운 것이 된다” 는 말처럼 가룟 유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생 실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주경신학자 박윤식 박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은 ①제자가 스승을 판 그 이상의 죄악이다
②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를 팔았다 ③죄인이 구세주를 팔았다
④죄인이 심판 주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배우던 제자가 스승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판 것까지는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짓은 못됩니다.
실로 가룟 유다는 잘못 했어도 너무 잘못한 사람이기에 인류 역사에 영원한 오명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입니다.(요14:6)
그를 떠나서는 영생을 얻을 자가 없는데(행4:12) 그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 값에 팔아 버렸으니 이 어찌 천인공로 할 죄악이 아니겠습니까?
어찌하여 유다는 이런 망령된 죄를 범했던 것입니까?
1.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근본적인 문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라고 했고, 요한복음 13:2절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고, 요13:27절에는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하였습니다. 이는 유다의 반역(叛逆)이 사단적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100% 마귀의 지배를 받아 반역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 정신이 아닌 망령된 행동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 증거로 (1) 예수님은 단돈 은 30냥에 판 것입니다.
설령 가룟 유다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다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어찌 인간으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얼마나 많은 교훈과 혜택을 받은 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도고치고, 가르쳐서 예수님과 함께 많은 대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을 어찌 헐값에 팔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코 제 정신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이처럼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막14:38)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2) 평소에 악한 버릇을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평소에 돈을 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칼로 그 발을 씻어 드렸던 마리아를 보고 돈을 낭비한다고 야단치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선교나 구제나 교육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고 주의 일에 인색한 사람들에게 마귀가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거나 불평을 하고, 또 유비통신의 전파를 발송하기도 합니다.
물론 헌금은 한 푼이라도 적중하게 신중히 사용하고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인색하면 축복의 문이 닫히고 마귀가 틈타기 쉽습니다. 유다의 그러한 악한 버릇에 사탄이 들어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했던 것입니다.
휘발유통에 불을 붙이듯 마귀는 그런 짓에 이력이 난 훼방꾼입니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배신입니다.
반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주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3) 결국 그 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의 행복의 재료가 되었습니까? 그 돈 가지고 먹고 입고 쓰고 호의호식했습니까? 집을 샀습니까? 논을 샀습니까?
오히려 가책과 갈등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다시 제사장에게 갖다 주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성소에 들어가 돈을 던져 놓고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27:5절)
사람이 마귀에게 붙들리면 이성을 잃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고 자기 정리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도 초기에 성령이 그 위에 운행하기 전에는 혼란과 혼돈 상태였습니다. 더러움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역사할 때 하늘과 궁창과 땅으로 정리되고 빛으로 생명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이 사실은 누구든지 제 정신이 아닌 가룟유다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근신하여야 하겠습니다. 마귀와 타협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에 동조하여 얻은 제물과 명예는 오히려 그것이 고통의 씨가 되고 파멸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추호도 진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피로 사서 세운 제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렇게 치사하게 굴욕적으로 얻은 은 30냥을 써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배반자 가룟유다를 여러분은 이 사순절에 깊이 묵상해 보면서 오직 진리만을 쫓아가는 건전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지막으로 왜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습니까?
다 같은 예수님의 제자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듯이 다 같은 죄인인데 왜 유독 가룟 유다에게만 마귀가 들어갔을까요?
물론 물질에 대한 탐심도 많았지만 오랫동안 그런 나쁜 마음을 품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어 줄 때도 깨닫도록 충고 하셨고(마26:9-10), 주님은 그 후에도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번 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도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특히 최후의 경고로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고 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탄식하기를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 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5-27) 경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성을 가지고 있기에 성질도 낼 수 있고, 욕심과 분한 마음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쁜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틈탄다고 했습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잊어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끝내 죄를 품고 있었기에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은혜 중에 가장 귀한 은혜는 무슨 은혜라고 했습니까? (깨닫는 은혜)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에 혹 나도 가룟 유다처럼 마귀가 틈탈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할 것 회개하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해집니다.
꽃도 귀한 꽃은 향기가 진동합니다. 우리 속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가 충만하여 예수의 향기가 그윽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죽어도 반역자는 되지 맙시다.
그 당시 은 30냥은 노예 한 사람의 값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값싼 존재로 여긴 배은망덕한 망령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아 사도직은 최고로 영예스러운 직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 썩어지면 가장 더러운 것이 된다” 는 말처럼 가룟 유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생 실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주경신학자 박윤식 박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은 ①제자가 스승을 판 그 이상의 죄악이다
②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를 팔았다 ③죄인이 구세주를 팔았다
④죄인이 심판 주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배우던 제자가 스승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판 것까지는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짓은 못됩니다.
실로 가룟 유다는 잘못 했어도 너무 잘못한 사람이기에 인류 역사에 영원한 오명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입니다.(요14:6)
그를 떠나서는 영생을 얻을 자가 없는데(행4:12) 그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 값에 팔아 버렸으니 이 어찌 천인공로 할 죄악이 아니겠습니까?
어찌하여 유다는 이런 망령된 죄를 범했던 것입니까?
1.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근본적인 문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라고 했고, 요한복음 13:2절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고, 요13:27절에는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하였습니다. 이는 유다의 반역(叛逆)이 사단적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100% 마귀의 지배를 받아 반역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 정신이 아닌 망령된 행동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 증거로 (1) 예수님은 단돈 은 30냥에 판 것입니다.
설령 가룟 유다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다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어찌 인간으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얼마나 많은 교훈과 혜택을 받은 자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도고치고, 가르쳐서 예수님과 함께 많은 대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을 어찌 헐값에 팔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코 제 정신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이처럼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막14:38)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2) 평소에 악한 버릇을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평소에 돈을 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칼로 그 발을 씻어 드렸던 마리아를 보고 돈을 낭비한다고 야단치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선교나 구제나 교육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고 주의 일에 인색한 사람들에게 마귀가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거나 불평을 하고, 또 유비통신의 전파를 발송하기도 합니다.
물론 헌금은 한 푼이라도 적중하게 신중히 사용하고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인색하면 축복의 문이 닫히고 마귀가 틈타기 쉽습니다. 유다의 그러한 악한 버릇에 사탄이 들어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했던 것입니다.
휘발유통에 불을 붙이듯 마귀는 그런 짓에 이력이 난 훼방꾼입니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배신입니다.
반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주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3) 결국 그 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의 행복의 재료가 되었습니까? 그 돈 가지고 먹고 입고 쓰고 호의호식했습니까? 집을 샀습니까? 논을 샀습니까?
오히려 가책과 갈등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다시 제사장에게 갖다 주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성소에 들어가 돈을 던져 놓고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27:5절)
사람이 마귀에게 붙들리면 이성을 잃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고 자기 정리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도 초기에 성령이 그 위에 운행하기 전에는 혼란과 혼돈 상태였습니다. 더러움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역사할 때 하늘과 궁창과 땅으로 정리되고 빛으로 생명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이 사실은 누구든지 제 정신이 아닌 가룟유다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근신하여야 하겠습니다. 마귀와 타협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에 동조하여 얻은 제물과 명예는 오히려 그것이 고통의 씨가 되고 파멸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추호도 진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피로 사서 세운 제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렇게 치사하게 굴욕적으로 얻은 은 30냥을 써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배반자 가룟유다를 여러분은 이 사순절에 깊이 묵상해 보면서 오직 진리만을 쫓아가는 건전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지막으로 왜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습니까?
다 같은 예수님의 제자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듯이 다 같은 죄인인데 왜 유독 가룟 유다에게만 마귀가 들어갔을까요?
물론 물질에 대한 탐심도 많았지만 오랫동안 그런 나쁜 마음을 품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어 줄 때도 깨닫도록 충고 하셨고(마26:9-10), 주님은 그 후에도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번 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도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특히 최후의 경고로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고 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탄식하기를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 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5-27) 경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성을 가지고 있기에 성질도 낼 수 있고, 욕심과 분한 마음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쁜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틈탄다고 했습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잊어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끝내 죄를 품고 있었기에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은혜 중에 가장 귀한 은혜는 무슨 은혜라고 했습니까? (깨닫는 은혜)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에 혹 나도 가룟 유다처럼 마귀가 틈탈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할 것 회개하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해집니다.
꽃도 귀한 꽃은 향기가 진동합니다. 우리 속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가 충만하여 예수의 향기가 그윽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죽어도 반역자는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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