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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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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121회 작성일 17-06-0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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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령세례와 중생의 관계 
존 스토트의 성령론에 대한 접근은 다양한 이론에 대한 반박보다는 오히려 성경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접근을 통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했다. 
먼저 그는 중생이 곧 성령의 선물임을 분명히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성령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거듭남은 ‘성령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요3:3-8). 또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롬8:15-16)의 말씀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라는 바울의 확언이 이것을 증명한다. 
문제는 성령의 선물이 곧 성령의 세례와 동일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오순절 운동이 성령의 선물 곧 중생과 성령 세례가 다르다고 보며 구원을 받은 신자가 후에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반면에 존 스토트는 중생은 곧 성령 세례이며, 따라서 구원과 성령 세례는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성령 세례를 설명한다. 
(1)성령 세례는 독특한 축복의 약속 
성령 세례는 전적으로 신약에만 나오는 표현으로(7회), 구약 성경이 기대해 온 것의 성취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순절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요엘이 약속한) 이 영의 ‘부어 주심’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약속한) 성령의 세례와 동일시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막1:8)는 세례 요한의 고백 역시 구약의 기대에 대한 성취를 통한 세례자로의 예수님의 독특한 사역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의 독특한 사역의 또 다른 언급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이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특징적인 사역은 이중적인데, 그 사역은 옮겨 버리는 것과 가져다주는 것, 즉 죄를 지고 가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는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역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게 됨을 확증해 주고 있다. 사도행전 1장과 2장은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약속’(행1:4; 2:33,39), ‘성령의 세례’(1:5), ‘성령의 부어 주심’(2:17,33)과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며, 죄의 용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복음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독특한 축복 중 하나이다. 
(2)성령 세례는 보편적 축복의 약속 
존 스토트는 성령 세례가 새로운 시대의 독특한 축복이면서 구약과 달리 중생한 모든 신자에게 임하는 보편적 축복이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인용했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행2:17)라는 요엘서 말씀에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신 약속의 강조점 역시 성령이라는 선물의 보편성이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중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역을 위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임하였다. 하지만 이제, 모든 믿는 사람은 성령의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늘 성령이 함께 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 오순절 베드로 설교의 결론은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성령 세례의 약속이 해당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2)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성령의 ‘선물’ 또는 ‘세례’라는 것이 과거적인 사건으로 현재와 미래에는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충만’이라는 지속적으로 축복으로 이어진다. 성령 세례의 결과로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행2:4) 따라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 세례의 결과였다. 세례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고(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충만은 그들이 받은 것이었다. 세례는 독특한 입문적인 경험이었고, 충만은 계속되는 영구적인 결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 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입문의 경험으로써의 세례는 반복될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충만은 반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든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죄로 인해 ‘근심하기도’ 하시고(엡4:30), 죄인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일을 그치기도 하신다. 
신약성경에서 사람들이 성령으로 “채우심을 받았다”거나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첫째, “충만하다”거나 “채우심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이 표현은 어떤 특정한 사역이나 직책을 위해 하나님이 내려주신 것을 가리킨다. 셋째, 때때로 성령의 충만은 일생 동안 지속되는 직분(예를 들면 사도나 선지자처럼)을 위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나 또는 어떤 위기 상황에 준비시키기 위해서 주어졌다. 이것은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의 시작에서 성령과 깊이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주님의 성령 충만함의 경험은 이 세 가지 범부를 전부 포함한다. 
3) 엡5:18- 21
성령 충만의 주된 증거가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성령의 은사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열매에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 충만에 대한 결과를 묘사한 유일한 본문으로 에베소서 5:18-21를 제시한다. 이 본문은 먼저 성령 충만을 우리에게 명령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 충만이 모든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받아들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결과로는 서로 화답하며(교제),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피차 복종하는 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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