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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유언(왕상2: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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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922회 작성일 11-02-2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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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후계자인 솔로몬 왕에게 왕으로서 지켜야 할 훈계와 지시를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이유언의 전반부는 (1-4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라는 내용이며, 후반부는(5-9절)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 행할 일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야 합니다. 다윗의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바로 나의 이야기도 되는 것입니다. 행여 나는 외예라고 착착하지 맙시다. 또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느긋하지도 맙시다. 사람의 종말은 목적지가 두 길 뿐입니다. 천국으로 갈 것인가? 음부로 갈 것인가? 는 자신의 믿음과 삶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해도 선택권은 자신의 몫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국을 향해가는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성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항해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1.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1-4절)

다윗은 단순한 유언이라기 보다도 명령이었습니다.(1절) 그만큼 강력한 당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솔로몬에게 한 명령은 우리 크리스챤 모두가 지켜할 절대 지침인 것입니다. 곧 가장 선(善)한 법칙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까? 말씀을 지킬 때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3절하)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훈계를 파기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파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앙에 일관하기 위하여 깊은 주의와 열심과 결단력이 절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무조건 주지 않으십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32,500 가지의 축복을 약속했는데 모두 그러한 조건이 선행되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육의 양식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절)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되 복받을 믿음생활을 한 사람에게 약속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일에 열심을 품고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롬12: )


2.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 문제를 유언함(5-9절)

다윗은 자기가 죽은 후에라도 정의가 바로 세워지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배려를 권장하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에 관한 처우 문제를 일러주었습니다.

(1) 요압 장군에 대한 처우(5-6절)

요압이 다윗의 군대장관으로 많은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교만과 투기 때문에 훌륭한 아브넬과 아마사 두 군대 장관을 죽임으로서 율법을 거역했음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압은 전쟁때에 죽인 것이 아니었고 태평시대에 피를 흘렸습니다. 요압은 그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처럼 꾸며 다윗을 속였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다윗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었으니 다윗의 명성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의 정의감에 처분을 맡기면서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요압에 대한 죄의 집행이 유예되었지만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죄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엄숙히 선언한 것입니다. 더욱이 살인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2) 바실래의 아들들에 관한 처우(7절)

다윗은 자신이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어려움 당할 때 자기와 군대를 도왔던 길르앗 사람 바실래를 잊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실래는 다윗이 마하나임에 갔을 때 침상과 대야와 그릇과 먹을 음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가장 어려웠을 때 괄시하지 않고 배고프고 목마른 사정을 알고 도왔던 배려를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려웠을 때 도와 준 바실래도 귀한 사람이지만 그 호의를 잊지 않은 다윗 임금도 훌륭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천도하면서도 바실래를 함께 가지고 권한 적이 있습니다.(삼하19:33절) 그런데 오늘은 임종석상에서 바실래의 아들들에게라도 자기가 못다 갚은 “은혜에 보달할 것을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 했을 것입니다.

잠27:10절에 “네 친구와 네 부모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먹는 자중에 참여하게 하라”고 한 것은 요즈음 같으면 연금을 지급해 주라는 뜻입니다. 후의는 친구들로부터 받은 친절을 그들의 무덤이나 우리들의 무덤에 매몰시켜 버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도 자주 자기에게 원기를 회복시켜 주던 오네시브로의 집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딤후1:16절 이하)

(3) 시므이에 관한 처우(8-9절)

시므이는 다윗이 곤비할 때에 저주하고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약하다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응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그가 귀환할 때 용서는 했지만 시므이의 독설이 가슴속에 못처럼 박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8절) 그러나 그 용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으니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만 집행 유예이었지 아들 솔로몬에게는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 것을 주의 주었습니다. 한번 배신 한 자는 믿을 수 없으니 결코 믿음직스런 자가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설령 피해자가 용서했다고 해도 자신의 죄책 때문에 오히려 죄진 자가 경계하며 재차 배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먼지를 날리고 저주했던 행위를 알지니 “그의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9절)고 했습니다. 시므이가 늙었지만 그의 죄 값은 반드시 치루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유언은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과 남에 대한 배려를 권장하는 공도를 어겨서는 안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한데 역점을 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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