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으로 도망간 다윗(삼상27:1-12절) > 수요예배설교

본문 바로가기


블레셋으로 도망간 다윗(삼상27:1-12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340회 작성일 10-05-19 10:56

본문

 

 


다윗은 두 번씩이나 사울을 해치지 않고 살려준 자기의 충심을 인정해주지 않고 계속 추격하는 사울을 무작정 피해 다닐 수만 없었습니다. 또 십 사람들의 배신은 다윗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자기 주변에 정탐꾼이 항상 있어서 유대 땅 어디에 피해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음을 안 다윗은 이제 유대 땅을 벗어나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블레셋 땅으로 도망 오게 된 것입니다.


1. 다윗의 도피 생활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18:10)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했고 하나님이 부리는 악신이 사울 속에 들어가(18:10)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벽에 창으로 꼽아 죽이려 했고(19:10) 미갈의 도움으로 피하여 기브아(사울의 본진)에서 라마로(19:18), 나욧(사무엘의 우거지)으로 또 놉 땅(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움 받음) (21:1)으로 피해 갔다가 가드 왕(블레셋 지역) 아기스에게 가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친 시늉까지 했었습니다.(20:13-14), 그 후 다시 동쪽 아둘람 굴로 도망했을 때 400명가량이 다윗에게 모여들었습니다.(22:1-2) 거기서 모압 왕에게 갔다가(22:3) 엔게디 황무지로 피해있을 때 (24:1) 굴에서 사울을 살려주었고 그곳에서 나발이 살고 있던 갈멜로(25:1-2)가 있을 때 아비가일과 결혼했습니다.

십 황무지로 피해있을 때 십 사람의 배신으로 사울이 또 추격 해 왔고 그곳에서 십 사람들의 배신을 염려한 다윗은 오늘 27장에서 그를 따르는 600명을 거느리고 블레셋 땅으로 피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드 왕 아기스의 보호를 구할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2. 다윗의 잘못된 출발

황량한 유다 광야에서 숨바꼭질하는 삶을 무한정 보낼 수 없었던 다윗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거느린 식구와 600명의 추종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가드(블레셋 땅)로 피한 결정은 여호와의 보호하심보다 사울의 끈질긴 추격이 더 두려웠음을 느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힘 있는 팔로 구원하실 수 있는 믿음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입니다. 사울의 수색(搜索)을 따돌린 점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이 문제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 세력의 종으로 전략되고 말았던 것은 슬픈 일입니다.(27:12, 28:2) 이러한 다윗의 행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직접적인 교훈을 줍니다. 일시적으로 생활고나 어떤 문제 때문에 신앙생활을 중단하거나 게을리 하며 당장 시급한 해결책으로 세상일에 매여 인위적으로 그 해결부터 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걸리면 영영 세상의 종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에게는 대적 자 편에 서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약4:4) 바울사도도 데마는 세상을 더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딤후4:10)


3. 일 년 넉 달간 가드에서 다윗의 생활

다윗은 가드 왕에게 요구하여 가드에서 지중해를 따라 남쪽에 위치한 시글락에 머물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곳 생활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식량조달이었을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아말렉 사람, 기르스 사람을 침노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생존하기 위하여 이러한 침노 행위를 자주하였고 그때마다 자신이 가드의 아기스에게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솔솔 본 아기스 왕은 “오늘도 누구를 침노하였느냐?”고 물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침노한 지역은 어디였습니까? 자신의 조국 유다남방이었습니다.(10절) 여라므엘은 30:29절에도 나오는데 유다의 아들(대상2:9) 베레스의 장자 헤스론의 후손들입니다. 겐 사람은 유대사람과 동맹관계를 맺고 조공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어쩌튼 유대의 극 남방지대 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않았다고 했으니 잔인한 전쟁을 했던 것이며 긴급한 사태가 아닌데도 무자비하게 포로들을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다윗은 후일에 자기의 명성에 누가 될까보아(블레셋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했음:11절) 그처럼 증거 인멸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가드 왕에게 경계하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잘못된 출발은 이러한 결과와 실수를 야기하게 됨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경계해야 합니다.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의 속셈을 몰랐기에 그를 믿었고 다윗의 조국에 배신자가 되었으니 영영 자신의 사역자(使役者)가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영원히 자신의 심복 부하가 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이었다고 이해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편법은 더 큰 악행을 동반하게 된다는 엄숙한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17건 4 페이지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