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하닷의 두 번째 실패와 아합의 우매(왕상20:22-43절) > 수요예배설교

본문 바로가기


벤하닷의 두 번째 실패와 아합의 우매(왕상20:22-43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862회 작성일 11-10-05 16:21

본문

 


하나님께서 아합을 도우사 두 번째 승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 패배한 아람군은 지휘관을 개편하고(24-25절) 작전을 변경하여 평지인 아백에 진을 쳤습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미약했으나 아람의 군사력은 막강했습니다.(27절) 서로 7일간 대치한 후 접전을 벌렸는데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람군대를 완전히 참패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과 이스라엘에게 신앙의 확신을 주기 위하여 승리를 증거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아합은 여전히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했습니다.


1. 아합의 승리(22-30절)

아합은 1차 전쟁에서보다 이번 2차 전쟁에서 더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숭배자요, 박해자인 아합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악한 자가 번영을 누리게 하시는데는 거룩한 지혜와 목적이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선지자의 권고로 아합이 싸움에 대비함(22절)

1차 싸움에서 이긴 아합은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2차 싸움에 대비토록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영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긴장은 않더라도 방심은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인 적으로부터 공격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주의하며 대처해야 합니다. 아합은 선지자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2) 벤하닷은 참모들과 의논했습니다.(23-25절)

아람의 참모들은 지난 번 싸움에 패배한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인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나님)은 산의 신이므로 이번에는 평지로 전지(戰地)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또 이번에는 군 조직을 개편하여 추종하던 왕들을 보내고 총독을 세워 지휘토록 하자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制限)하였으니 특별한 지역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처럼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벤하닷의 대패(大敗) (26-30절)

1) 벤하닷은 아셀 지파에 속한 아벡 근처에 진을 쳤습니다.

역시 양군의 숫자의 불균형은 현저했습니다.(27절) 이스라엘은 숫자도 적으려니와 장비도 허술하여 외관(外觀)도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아람인들은 숫자와 전차, 수송차, 짐들로 온통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2) 사기가 충천한 아합(28절)

아람의 군세에 기가 죽을만도 한데 아합은 오히려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이유인 즉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찾아와 하나님께서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람 사람들이 “하나님은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여호와인 것”을 확실하게 알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람은 만군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영예와 전능을 무시했으니 그들의 자신감의 근원이었던 군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러한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3) 벤하닷의 대패(29-30절)

칠 일간 대치하던 두 군대가 일곱째 날 접전하여 하루 동안에 아람 군대 보병 10만 명이 죽고 아벡으로 도망갔으니 그곳에서 남은 자 27,000명위에 성벽이 무너져 벤하닷은 기겁을 하여 도망쳐 성읍으로 들어가 골방에 숨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대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성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이곳은 안전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던 성벽이 무너질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황금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성벽이 못됩니다. 숫자만 믿고 오만 방자했던 벤하닷은 혼자 몰래 도망하여 골방에 숨었으니 최대의 비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3. 아합의 어리석은 자비(20:31-41절)

이 부분은 아합의 어리석은 자비에 대한 기록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통하여 벤하닷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그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었습니다. 벤하닷은 신하들의 권유로 굵은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아합에게 나아와 구명을 요청했습니다. 사람이 번영을 만끽할 때 거만해지는 자는 흔히 역경에 부딪히면 비열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낮추시고 멸시하시며, 티끌 속에 묻어버리심”으로서(욥11:11-13절)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아합은 어리석게도 벤하닷의 항복을 수락했음.

반대로 아합은 교만해졌습니다. 아합은 우쭐한 마음에 벤하닷의 위조된 항복에 속아 넘어갔으니 형제라는 말을 듣고(33절) 일언반구도 책망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영예에 무관심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돌려주고 다메섹을 아합의 거리로 만들라는 벤하닷의 제의에 홀딱 반하여 그 누구와도 상의 없이 화친조약을 맺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성공이 잘못 주어지는 때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이 은총을 주어도, 의(義)를 깨닫지 못합니다.  


4. 하나님의 종을 보내 책망하심(35-43절)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벤하닷을 자기 마음대로 살려준 것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선지자는 비유적인 언행을 사용하여 아합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였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다른 친구에게 자기를 치라 하였더니 그는 선해서 치지 않았으므로 가다가 사자를 만나 죽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쳤더니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아합)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신의 목숨을 놓아 준 사람의 목숨을 대신할 것이요,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42절)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왕하10:32-33절) 그들의 다른 죄악이 그들을 비천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동정은 도성을 붕괴시킵니다. 이 선지자의 충고에 오히려 아합은 분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43절) 승리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권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0-11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17건 5 페이지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