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멜산의 대결(Ⅱ. (왕상18:20-29절)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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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의 대결(Ⅱ. (왕상18:20-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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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3,984회 작성일 11-08-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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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 장면 중 일부입니다. 이는 참 하나님을 밝혀내기 위한 신앙적인 대결이었습니다. 숫자적으로는 훨씬 우세하였던 바알 선지자들은 매우 요란하고 거창하게 기도와 의식(依式)을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요란하고 광적인 바알 선지자들의 모습을 보고 아마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우상에 불과한 바알은 아무런 응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1. 먼저 백성을 힐책(詰責)한 엘리야(21절)

하나님 예배와 바알 예배를 혼합시킨 백성들을 힐책했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신을 동시에 섬기고 있었으니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고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백성들은 예언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예배했고, 이세벨의 비위를 맞추고 조정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처럼(왕하17:33) 기회를 엿보면서 양편을 다 편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무슨 신이 필요한 것입니까? 완전한 것에 무엇을 더하려는 것입니까? 양다리를 걸치려는 인간의 약아빠진 생각이 우상을 불러들이고 자충수에 빠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마12:30) 양이 아닌 것은 염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죄를 섬기는 일,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우리 정욕의 통치권 사이를 머뭇거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그런 사람은 매사에 시종일관하지 못하고 눈치꾼 노름만 하다 끝납니다. 그들은 마음이 나뉘운 자들입니다.(호10:2) 하나님은 전부가 아니면 전혀 받으시지 않습니다.

(2) 우리는 “우리가 섬기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수24:15)

엘리야가 한 신만을 쫓을 것을 요구하며 책망했을 때 백성들은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때서야 잘못을 깨닫고 감을 잡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신인 하나님을 발견했다면 목숨 걸고 그를 취해야 합니다.


2. 공정한 심판을 제의한 엘리야(22-24절)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엘리야 혼자 850:1의 대결을 하여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정한 신(하나님)임을 가려내자고 대담한 제의를 했습니다. 각각 송아지를 각을 떠서 나무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말고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여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을 증거 해 보이자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제의였으니 엘리야는 이미 기도 중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될 것이니 신성모독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는 그릿 시냇가에서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기에 이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해했던 것입니다. 그 막강한 권력자들과  숫자 앞에 단신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실존과 전능하심을 대변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여 세상 권세를 잡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보여준 한 가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로 속죄 제물을 소멸함으로 참 신임을 입증할 수 있는 신이 우리를 죄에서 구출할 수 있는 하나님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을 주실 수 있는 그가 물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3. 본격적인 대결(25-29)

바알 예언자들은 먼저 숫자적으로 우세했기에 반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바알을 태양신으로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승리도 기대했을 것입니다. 만일 무승부로 끝난다면 사실상 승리는 그들 것이기도 했습니다. 또 백성들은 엘리야의 제의대로 통쾌하게 참 신이 증명되기를 원했을 것이므로 엘리야의 방법이 옳다고 동의 했습니다.(21절하)

(1)엘리야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25절)

실컷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좋으나 속임수는 쓰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사탄의 역사는 거짓 이적임을 알기에 (피 재앙 출7:22, 개구리 재앙 출8:7, 이 재앙 8:18) 속임수만은 막으려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의 숭배자들은 너무도 몰지각했습니다.

1) 바보 같았습니다.

 아무리 바알을 부르고 소리쳐도 응답이 없자 “단 주위에 뛰놀더라”(26절하)고 했습니다. 응답의 열망은 춤을 추면서 자기들의 신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뻐서 우러난 잔치가 아니라 억지 파티였으니 그들의 신(神)도 신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바보들의 행진 같았습니다.

2) 미친 자들 같았습니다.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28절) 그들은 송아지의 피가 뜻을 못 이루자 자기들의 피로 소원을 이루려는 심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섬기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신14:1) 악마의 일은 때로는 몸을 즐겁게 해 주지만, 때로는 질투나 술 취함같이 몸을 잔인하게 만듭니다.

(2)응답 없는 바알(27-28절)

엘리야는 장시간동안 우상에게 기도하는 소리를 인내성 있게 듣고 있었습니다. 자기도취에 빠져 억지 놀음을 하고 있는 바알 선지자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짜증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알신이 잠들어 있는지 깨우라”고 조롱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더 난폭해졌으며 우스꽝스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44:20절에 보면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오른 손에 거짓을 움켜잡고도 그것이 거짓인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무심한 바알은 저녁 소제드릴 때까지 아무 응답도, 반응도 없었습니다.(29절) 우상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공중 권세 자들의 임금은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에만 “하늘로서 불을 내려오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미혹하는 짐승이 이런 일을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계13:13, 14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악마에게 그런 허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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