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멜산의 대결(왕상18:16-40절)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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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의 대결(왕상18:16-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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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3,825회 작성일 11-08-0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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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은 가뭄의 책임이 엘리야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재앙의 책임이 아합과 그 집이 바알을 섬겼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을 선포했습니다.


1. 아합이 엘리야와 만남(16-19절)

오바댜는 엘리야의 사자(使者) 역할을 잘 해 냈습니다. 오바댜의 주선으로 엘리야를 만난 아합은 참으로 비열한 탓을 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 (17절)고 모독스런 언사를 썼습니다. 악한 아합은 여로보암 왕이 예언자에게 손을 대려 했으나 손이 말라 거두지 못했던 사실(왕상13:4절)을 기억하고 있기에 폭력은 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과 일꾼들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느냐를 보아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아합을 만나려는 엘리야의 목적

엘리야는 대결하러 온 것이 아니요 비가 오리라는 축복의 소식을 전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간혹 자기 주관과 감정을 가지고 남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려 매도 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훌륭하고 유용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국가의 방해군”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내 몰렸습니다.

(2) 엘리야의 대담한 힐책(詰責:reproach)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바로 당신”이라고 직공(直攻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아합과 그 집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자과부지(自過不知)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잘못은 모릅니다. 문제는 자기들이 일으켜 놓고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남 때문에 안 된다고 더 큰 소리치는 것을 우리는 왕왕 보고 당합니다. 엘리야는 심판의 예고와 경고를 하고, 회개하면 막을 수 있다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온 하나님의 사자(使者)였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3)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권위로 도전장을 낸 엘리야(19절)

갈멜산은 하나님의 제단이 세워져 있던 곳입니다.(30절) 엘리야는 거짓 신들 속에 파 묻혀 참과 거짓을 혼돈하고 있는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누가 참 신인지 증명 해 보자고 선전 포고를 했는데 참으로 대담한 도전이었습니다. 바알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바로 850:1의 대결을 선언했습니다. 참으로 믿는 구석 없이는 이렇게 통이 클 수 없습니다. 다윗 임금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시27:1) 라고 당당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가 제일 강한 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드디어 대결은 시작되었습니다.(20-40절)

아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850:1 해 보나 마나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전국에 통고하고 우상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모았습니다.

(1) 먼저 회개를 촉구한 엘리야(21절)

아마 백성들은 엘리야가 그 나라를 축복해 주고 비가 오도록 기도해 줄 것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회개 없이 심판의 제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들의 마음을 예비하시고, 그 다음에야 들을 귀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먼저 그에게 향하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십니다”(시10:17, 80:3) 도망자는 다시 돌아와 충성을 다하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호의를 바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별력 없는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 해 볼 것은 3년 반 동안의 기근도 그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잔꾀를 부리며 약은 것 같으나 영은 너무너무 둔하고 미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악령이 눈과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알을 자기 적수로 여기고 논쟁을 허락하신 것은 오직 백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겸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이 세상 속으로 내려오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in carnation)사건입니다. 그렇게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우리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십자가에 제물이 되어 대신 죽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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