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킴(왕상17;17-24절)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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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킴(왕상17;17-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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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8,357회 작성일 11-07-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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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서 과부가 선지자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 계속 보상받게 되는 장면을 목도합니다. 엘리야의 간곡한 기도가 응답되어 과부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엘리야는 간곡한 믿음의 기도가 능력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막9:29절) 그리고 자식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통하여 사르밧 과부는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1. 아이의 병과 죽음(17절)

죽은 아이는 그 여인의 독자였습니다.(12절하) 그 아이는 이 여인의 과부살이의 유일한 기쁨이었으며 생존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1) 당시 과부는 선지자를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를 부양하는데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충분히 돌보아 주셔서 이런 슬픔이 없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이 병 증세가 악화되어 갑자기 죽고 마는 청천벽력 같은 슬픔을 당했습니다. 간혹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열심히 봉사하며 사는데 몹시 쓰라린 고난이 닥쳐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이 여인은 기적적인 축복으로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전혀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호의가 극히 분명하게 나타난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책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슬픔을 통하여 더욱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알게 하시고, 더욱 의지해야 할 분을 찾게 하십니다. 육신의 양식은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떡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영원히 먹고 죽지 않을 참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요6:49-50절)


2. 이 여인이 선지자에게 한 가련한 호소(18절)

아이는 갑자기 죽었습니다. 만약 시름시름 아프다 죽었다면 벌써 엘리야에게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사정했을 것입니다. 아들이 죽자 이 여인은 절망 속에서 슬픔을 발산하기 위하여 엘리야를 찾은 것 같습니다.

(1) 당황한 여인

이 여인은 양식이 없어 죽을 것을 예감했을 때는 죽음에 대하여 느긋하게 말했습니다.(12절) 그러나 여기서는 극히 혼란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고난은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으나 일단 우리에게 재난이 닥치면 놀라게 됩니다.(욥4:5절) 대부분 침착성을 잃게 됩니다. 이 여인은 마치 엘리야에게 아이를 죽게 한 것처럼 힐난하면서 이전의 자비와 기적은 모두 잊어버리고 원망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욥이 하나님께 따졌던 것처럼(욥10:2절) 이 여인도 엘리야에게 퍼 부었습니다.

(2) 그러면서도 이 여인은 자기의 죄를 의식 했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오셨습니까?(18절) 이 여인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비가오지 않게 기도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우상을 섬긴 죄를 물어 아들을 죽게 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음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평안을 깨뜨리실 때에는 그가 우리를 기억하실 때입니다.

우리 죄는 언제고 우리를 칩니다. 경과 한 지 오래 되었을지라도 가장 적절할 때 그것을 기억나게 건드리십니다. 그렇게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 죄는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처럼 그런 슬픔까지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유의하고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2) 하나님께서 이런 아픔과 슬픔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죄를 기억하고 회개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좋다는 사람도 대부분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3. 여호와께 부르짖는 엘리야(19-21절)

엘리야는 절규를 들으면서 응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죽은 아이를 어미의 품에서 받아가지고 자기 침상에 뉘었습니다. 엘리야도 아이의 죽음을 가슴 아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아이의 죽음을 곧 자기의 불행으로 느꼈기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26절)

(1) 주께서 내린 재앙임을 믿음

엘리야는 기가 막혔습니다. 불쌍한 어머니에게 이 재난은 너무 과중함을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어찌 하필이면 자기가 우거(寓居)하는 집에 재앙을 내리시느냐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머문 가정에 재앙이 임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접하시를 꺼릴 것이니 이 사건은 선교에 엄청난 제약(制約)을 가져올 일입니다. 엘리야는 이 재앙의 시행자가 하나님임을 믿었기에 더욱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2) 아이를 소생시켜 주실 것을 믿음(21절)

엘리야는 우리를 죽이는 자도 하나님이시오, 살리는 자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물론 기도한다고 죽은 사람이 다 살아나진 않습니다. 다윗도 아이를 위해 기도했지만 죽었습니다.(삼하12:23절) 그러나 엘리야는 이 아이의 죽음이 자기와 연류 되어 있음을 믿었기에 아이 위에 몸을 펴서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각별한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호흡과 온기로서 그 아이에게 생명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이처럼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넣어 줍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고백은 영혼 불멸설에 대한 암시와 증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4. 아이의 부활과 어머니의 기쁨(22-24절)

아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22절)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위력과 기도를 들으시는 분의 권능을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살아난 아이를 어머니에게 다시 안겨주었습니다. 살아난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감격했습니다. 그 여인은 밀가루와 기름병의 기적을 체험했고, 지금도 그것을 먹고 있으면서도 아기가 죽으니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조그만 문제 앞에서 엉뚱한 의심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아이를 살리신 하나님은 우리도 살리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이의 죽음은 나사로의 죽음처럼(요11:4절)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선지자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고백한대로 다시는 의심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일에 헌신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죽었다 살아나심을 보고 믿기에 이젠 두 번 다시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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