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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과 아람(수리아)과의 전쟁(삼하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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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3,971회 작성일 10-08-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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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조문 사절을 랍바성에 보냈습니다. 그의 아들 하눈이 조문 사절에 보인 치욕적인 처사로(4절)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1차(9절-14절), 2차(15절-19절), 3차(11:1절)에 걸쳐 계속 되었습니다.


1. 암몬족과의 전쟁(1-5절)

원래 나하스는 이스라엘의 원수였고 잔인한 대적이었으나(삼상11:L2절) 당시 사울과 사이가 나빴었기 때문에 쫓기는 다윗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대한 나하스의 동기가 어떠했던 베푼 친절을 감사하여 조상(弔喪)하기 위해 다윗의 심복들을 보냈습니다.(2절) 그러나 그러한 다윗의 호의를 곡해한 나하스 왕의 아들 하눈은 방백들의 말만 듣고 사절단을 정탐꾼으로 몰아 사절단들의  수염절반을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엉덩이의 중간부분)까지 자르고 돌려보냈습니다.(4절) 이 얼마나 치욕적인 처사입니까? 그들은 차마 부끄러워 다윗성에 들어 올 수 조차 없어 다윗은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 오도록 지시했습니다.

①거짓된 인간은 곧잘 남도 자기들처럼 거짓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이웃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은 자기 이웃이 자기들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호의라도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소리를 듣더라도 이상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고전13:5절)

②하눈의 행동은 악하고 더러웠습니다. 간사한 자들의 말만 듣고 비열해졌던 것입니다. 설사 다윗의 사절들이 악한 목적으로 왔더라도 지혜롭게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사신의 명예는 국제법상  보호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신들에게 범한 행위는 곧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었습니다.

③다윗은 이러한 학대를 받은 자기 신복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이 많고 엄숙한 외모를 명예로 생각하며 수염을 길렀습니다. 그 수염이 그것도 반만 잘렸으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치욕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옷은 갈아입으면 되지만 절반만 잘린 수염이 정상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은밀한 곳인 여리고에 머물다 오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이러한 치욕적인 대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수염이 자라게 되듯이 억울한 수모에 가슴 아파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성경은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며 그를 기다리라”(시37:6-7절)고 했습니다.


2. 암몬과 아람 사람들의 패주(10:6-14절)

암몬은 자기들의 악한 행위가 다윗에게 보복 당할 것을 알고 전쟁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 사신들에 대한 그러한 모욕은 바로 선전포고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부득불 외국 용병을 고용했습니다.(6절)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대들었으니 그런 행동은 결과적으로 자멸을 불러들인 꼴이 되었습니다.

(1) 쌍방간의 교전 준비

①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전군을 양군(兩軍)으로 나누었습니다.

암몬군은 성문에 포진하여 정면으로 이스라엘군을 대적하고 용병인 아람군은 멀리 들에 포진하여 이스라엘의 측면이나 후군을 치게 했습니다.(8절)

②요압은 지장(智將)답게 적군의 의도를 간파하고 자기 군대도 양분(兩分)시켰습니다. 자기는 정예부대를 편성하여 아람 사람을 치고, 동생 아비새는 암몬인과 싸우게 했습니다.(10절) 아마도 아람군은 용병이므로 전쟁에 능할 것으로 보아 요압자신이 맡았던 것 같습니다.

(2) 전투에 앞서 요압이 행한 연설(11,12절)

①그는 슬기롭게도 동생 아비새에게 일군(一軍)을 맡기되 전력의 분산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지 않게 하며 어느쪽이든 고전(苦戰)하는 쪽을 돕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부상조(相扶相助)는 형제의 의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참조 눅22:32, 고전12:21절)

②그는 자기 동생과 전 장병을 격려하며 전력을 다해 전쟁에 임할 것을 권면했습니다.(12절)

큰 위험은 참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법입니다.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기를 원하노라” 요압은 백성들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진력(盡力)하되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시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방법이 나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에서 벗어난 어떤 행위도 선할 수는 없습니다.

③요압은 경건하게도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우리는 의무의 이행을 본분으로 삼을 때 최대의 만족감으로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요압은 드디어 아람인과 암몬인의 동맹군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13, 14절) 적을 강하게 보고 대비했던 것이 오히려 적들에게 요압군이 강한 적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람군이 요압에게 패망하자 암몬군은 싸우지도 않고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갔습니다.(14절) 왜 아람군이 쉽게 패망했을까요? 요압군의 기세도 강했겠지만 역시 그들은 삯군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3. 다시 패한 아람군(10:15-19절)

(1)여기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승승장구하는 다윗의 군을 저지하기 위한 아람군의 새로운 공격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패잔(敗殘)한 아람군은 다시 싸우기 위해 강 건너편에 있는 동맹국과 속국들에게 원조를 청하였습니다.(16절)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는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듬 같이 그들을 모으셨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은 그들의 계교를 간파했습니다.

그들이 공격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넜으며 (17절) 대 접전 끝에 아람군을 궤멸시켰습니다.(18절) 그곳에서 아람 병거 700승의 사람과 마병 40,000명이 죽고 아람의 군대장관 소박도 전사했다고 했습니다.

(3) 아람에게 승리한 결과 다윗은 몇몇 조공 국을 획득했습니다.(19절) 하닷에셀(아람)에게 속한 왕들과 군소 제후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는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암몬을 돕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을 돕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넘어질 때는 돕던 자들도 함께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눈이 신복을 모욕하고 조롱했듯이 그리스도의 사자(使者)들을 욕보이고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사역자들에게 가해진 모욕과 피해를 자신에게 대한 것으로 간주하십니다.(마21:41, 마22:7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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